(조선일보 2018.10.03 수미 테리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
남·북한의 전략은 분명한데 美 한반도 정책은 혼란 겪어
트럼프는 매번 참모진 의견 無力化하는 언행 드러내
이대로면 북한의 核 포기 전에 韓·日 핵우산 철수 먼저 볼 수도
수미 테리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
최근 움직임이 시작된 2차 미·북 정상회담은 올해 말 또는 11월 미국 중간선거 전에 이뤄질 수도 있다.
이번에는 한·미 군사훈련 중단에 합의했던 1차 미·북 정상회담 때보다 미국이 더 큰 양보를 할지도 모른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지 않고 핵 관련 물질·무기를 만들고 있다는 정보기관의 첩보에도,
미국은 한반도 종전(終戰) 선언을 수용하고 최소한 일부 제재를 풀라는 압력을 한국·북한·중국·러시아 등
4국에서 받고 있다.
북한은 단기적으로는 고립 탈피와 제재 완화를 달성해 국제적 정당성을 높이려 한다.
장기적으로는 국제사회에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 한반도에서 입지를 강화해 한·미 동맹을 약화시키는 게 목표다.
종전 선언은 그 첫걸음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종전 선언을 통해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기를 바란다는 사실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평화협정은 유엔군사령부 체제를 허물고, 종국적으로 주한 미군 철수와 한·미 동맹 해체로 이어질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역시 김정은 정권의 개방과 비핵화를 앞당기기 위해 대화와 경제적 지원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최근 문 대통령은 미 외교협회(CFR) 연설에서 북한 비핵화를 위해 "미국과 국제사회가 북한과 맺은 적대 관계를 종식하고
북한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게 필요하다"며 종전 선언을 거듭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종전 선언이 평화협정으로 반드시
이어지지 않는 정치적 선언일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이 선언이 협정으로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다.
한국과 북한이 분명한 전략과 접근법을 갖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트럼프 정부의 한반도 정책은 혼란과 기능 장애
(dysfunction)를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참모들 조언을 따른다면, 미국은 좀 더 일관된 정책을 펼 수 있을 것이다.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짐 매티스 국방장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포함한 미국 고위 관료들은
미국이 종전 선언을 한다면 그 대가로 북한의 핵무기·미사일 프로그램, 핵분열 물질과 핵탄두·탄도미사일의 생산 중단,
모든 핵 프로그램 폐기를 위한 일정 제시 같은 확실한 다짐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북한은 미(未)신고 시설에 대한 불시(不時) 사찰에도 합의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참모진 의견을 매번 무력화하는 다른 시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지난달 19일 폼페이오 장관은
미국이 2021년 1월까지 거의 모든 과정을 마치는 '북한의 빠른 비핵화'를 보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반면 트럼프는 "미국이 북한과 '시간 싸움(time game)'을 할 필요가 없으며, 북한의 핵 프로그램 해제를 위해
서두르지 않겠다"고 했다. 그가 서두를 필요 없다고 하는데 북한이 왜 비핵화 일정에 합의하겠는가.
트럼프는 또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과 세 번째로 회담하면서 합의한 몇 가지 상징적 조치에 대해서도 열렬한 찬사를 보냈다.
미국의 '상응하는 조치'에 대한 대가로는 국제사회 참관 아래 이뤄지는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 영구 폐쇄,
영변 핵 시설 폐쇄 등이 포함된다.
김정은은 미국 인공위성이 쉽게 탐지할 수 있는 낡고 가치가 덜한 시설들을 내놓는 대신, 현대식 우라늄 농축과
고체연료 미사일은 그대로 두고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이런 조치가 "매우 흥분된다!"고 트윗을 했다.
그의 성급한 환호는 대북 압박을 유지하려는 미국 행정부의 노력을 약화시킨다.
트럼프는 다른 세계 지도자들이 자기를 속이기가 얼마나 쉬운지 계속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트럼프에게 '아첨(flattery)'만 하면 된다. 김정은도 이를 잘 알고 있다.
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또다시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 진전을 이루지 못할 경우, 김정은은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정당성을 높이고 대북 경제 제재를 약화하며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는 목적을 계속 밀어붙일 것이다.
김정은이 지불 의사를 밝힌 유일한 대가는, 기존 대량 살상 무기는 그대로 둔 채 핵과 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을
중단하겠다는 것뿐이다.
트럼프는 한·미 동맹 훼손 위험을 무릅쓰면서 북한이 원하는 것을 주려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한은 최근 평양 공동선언에서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 위협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고 합의했다.
이대로라면 우리는 북한의 핵무기 포기를 보기 전에 한국과 일본의 핵우산 철수를 먼저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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