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2018.10.05. 14:10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3일 보도된 미국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측에 제안했다고 공개한 내용의 줄거리는 이렇다. 하나는, 미국은 북한 핵 리스트 요구를 뒤로 미루고, 영변 핵시설 폐쇄를 수용하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북한은 종전선언 같은 미국의 상응 조치에 대한 대가로서 영변 핵시설을 영구적으로 폐기하라는 것이다. 종합하면, 영변 핵시설 폐쇄와 종전선언을 맞교환하는 식으로 합의하라는 것으로, 이를 ‘비핵화의 획기적 진전’으로 규정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7일)을 앞둔 미국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직 명확하지 않다. 핵 리스트 신고·검증이 모든 협상의 출발점이라던 기존 입장과는 크게 다르지만, 중간선거를 한 달 앞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적 도박을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예단하기는 힘들다.
그동안 문재인 정권 내부에서 존재감이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던 강 장관의 이번 발언이 큰 파문을 일으키는 것은 우선, 치열한 미·북 핵 협상 줄다리기에서 일방적으로 북한 편을 들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미국의 핵 신고·검증 요구를 “강도적 요구”라고 비난하면서 종전선언 등의 상응 조치를 하면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겠다고 밝혀 왔다. 이 주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한 것이다.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이라고 하더라도 유엔군사령부의 존재 이유를 없애고 주한미군의 성격 변화도 강요해 한·미 동맹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문 대통령이 ‘뒤집을 수 있는 것’이라고도 했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강 장관이 문 대통령 지시에 따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북한 핵 폐기는 저해하고, 대한민국 안보는 위협한다. 외교는 총칼 없는 전쟁인데, 그 지휘관이 어느 편인지 국적을 헷갈리게 할 정도다.
강 장관 발언은 사실관계에서도 오류가 많다. 9·19 공동성명을 예로 들면서 “핵 신고를 받은 뒤 그걸 검증할 프로토콜을 만들려다 실패했다”고 했는데 명백한 왜곡이다. 2005년 6자회담 합의 뒤 우여곡절 끝에 2008년 북한은 1만8000쪽짜리 자료를 넘겼다. 그러나 영변 핵시설 가동 자료였을 뿐 ‘핵 리스트’는 아니었다. 그나마 검증 프로토콜 협의 단계에서 협상이 중단됐다. 무엇보다, 영변 핵시설은 이미 ‘고철’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실질적 의미가 없다. 북한은 이미 고농축 우라늄(HEU)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핵 프로그램의 매우 큰 부분’‘핵심 핵시설’이라고 과장했다. 무지의 결과든 의도한 것이든 모두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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