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시론>포퓰리즘과 문재인정부

바람아님 2018. 10. 13. 09:52
문화일보 2018.10.12. 14:10



포퓰리즘 세계화 추세 확대로

국민이 선출한 지도자에 의해

자유민주주의 파괴 사례 속출

文정부 포퓰리즘 성향 짙어져

‘국민 모두의 대통령’ 약속한

취임식 당시의 초심 돌아봐야


포퓰리즘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자유민주주의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태동해 20세기 라틴아메리카로 전파됐던 포퓰리즘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대륙에서 기세를 올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선전은 대표적 포퓰리즘의 부상 사례로 꼽혔지만, 지난해부터 이어진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웨덴 선거에서 좌우 포퓰리즘 정당들은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두며 기존 정당들을 위협하는 중이다.


포퓰리즘은 인류 이데올로기 발전사에서 ‘역사의 종말’(프랜시스 후쿠야마)을 가져왔다고 표현될 정도로 보편화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란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면서(자유주의), 국민의 뜻을 공공정책으로 변환하는(민주주의) 정치체제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는 어느 한 당이 너무 많은 권력을 갖는 일을 막고 여러 집단의 이익을 조정할 수 있도록 견제와 균형을 추구한다(야스차 뭉크 ‘위험한 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의 핵심가치로 3권 분립, 법치, 언론·종교·결사 등 시민의 권리 보장 등이 꼽히는 이유다.


그러나 포퓰리즘에서 ‘민중의 뜻’은 중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포퓰리스트들은 소수집단, 특히 기득권 계층을 배려하는 일을 ‘부패’로 간주한다. 자유민주주의가 국민이 선출한 지도자의 손에 죽음을 맞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스티븐 레비츠키 등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이들은 선출된 독재자가 ‘국민의 지지’라는 이름으로, 사법부를 효율적으로 개편한다는 명분으로, 부패 척결이라는 기치를 내세우며 민주주의를 파괴한다고 본다. 특히 정치 경쟁자를 적으로 몰아세우고 헌법 질서의 파괴자라고 비난한다, 상대 정당이나 시민단체·언론에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협박한다, 폭력을 용인하거나 다른 나라의 정치 폭력을 칭찬 또는 비난하기를 거부한다, 말과 행동으로 헌법을 위반할 뜻을 드러내거나 선거 불복 등을 언급한다 등 4가지 징후를 제시한 뒤 이 중 하나라도 해당되면 독재자로 규정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 모두의 대통령’ ‘권력기관은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 ‘야당은 국정운영 동반자로 대화 정례화’ 등을 약속했다. 그러나 지난 17개월 동안의 국정운영에는 포퓰리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임기 5년 동안 지속하겠다는 적폐청산의 대상에는 정치 경쟁세력의 인사들이 주로 오르내린다. 때로는 지난 6월 무혐의 처분을 받은 박승춘 전 보훈처장과 같이 정치보복이란 의구심을 자아내기도 한다. 국회를 대하는 현 여권의 태도는 진보성향 언론으로부터도 비판을 받았다. 정부로부터 정당하게 발급받은 아이디로 국가재정정보시스템에 접속해 청와대 직원들의 업무추진비 내역 등을 입수한 심재철 의원을 정부 여당이 ‘국가기밀 불법 탈취 사건’이라며 검찰에 고발한 것과 관련, ‘정윤회 비선 의혹’을 제기한 청와대 문건 공개 사건을 상기시킨다는 것이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국기문란 행위’라고 대로하자 검찰이 나서 전광석화같이 사건을 정리했다.


사법부도 최악의 수모를 겪고 있다. ‘사법농단 및 재판거래 의혹’을 규명한다며 전직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청구되고 전·현직 판사들이 잇달아 검찰 포토라인에 서고 있다. 이런 와중에 신임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이 진보성향 판사들의 사적 모임인 우리법연구회나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인사들로 줄줄이 교체되고 있다. 이번 사법파동이 어떤 형태로 마무리되더라도 이제 법원의 판결은 ‘코드 시비’에서 자유롭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반면 ‘청와대정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권력의 청와대 집중은 더 강화됐다. 청와대의 규모와 역할이 계속 확대되면서 내각은 형해화됐다. 더구나 그런 청와대를 장악하고 있는 주류는 운동권 출신과 시민단체 출신들이다.


민주화운동 경력이 민주적 국정운영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독재 투쟁 속에서 형성된 선민의식과 자기확신, 명확한 피아 구분과 비타협적 태도는 민주주의 최대 적이자 포퓰리스트의 대표적 특징인 반다원주의적, 비자유주의적 행태로 나타날 수 있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 구성원들이 하루빨리 지난해 5월 10일 취임사를 작성하고 검토하던 당시의 초심을 돌아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