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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탓하기 전에 네 방부터 치워" 스타 교수의 버럭강의

바람아님 2018. 11. 3. 18:22

(조선일보 2018.11.03 곽아람 기자)


유튜브 구독자 150만명이나 되는 심리학자 피터슨의 자기계발서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라"… 嚴父처럼 청년들에게 냉정한 조언


12가지 인생의 법칙 12가지 인생의 법칙

조던 B. 피터슨 지음|강주헌 옮김|메이븐|552쪽|1만6800원


조던 피터슨(56) 토론토대 심리학과 교수가 쓴 이 자기계발서는 올 초 출간된 지 7개월 만에 미국·

캐나다·영국에서 200만부 넘게 팔렸다. 출간 후 22주 동안 아마존 베스트셀러 종합 1위를 차지했다.


피터슨 교수는 현재 서구 지식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인물 중 하나다.

유튜브 채널 구독자가 150만 명이 넘고, 누적 조회 수가 7500만 회에 달하는 '스타 학자'다.

좌편향된 서구 대학가에서 그의 존재는 이례적이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해 비판적이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큰 논란은 반(反)페미니즘적 입장이다.

그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모두 사회적으로 구축된 것이라는 포스트모더니즘 논리에 반대한다.

피터슨은 지난 1월 영국 채널4 뉴스에 출연, 저널리스트 캐시 뉴먼과 남녀 임금 격차 문제를 놓고 토론했다.

피터슨은 남녀 임금 격차가 오로지 남녀차별 때문이란 논리에 반박했고, 이 인터뷰는 채널4 뉴스 역사상

가장 많은 시청자 수(800만 명)를 기록했다.


페미니즘 열풍이 몰아치는 요즘 피터슨은 남성들, 특히 젊은 남성들에게 일종의 '해방구'로 여겨진다.

그의 책을 사 보는 대다수가 20~30대 남성이다. 국내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책을 출간한 메이븐 강수진 대표는 "젊은 남성 위주로 구성된 피터슨 팬클럽이 인터뷰 영상을 번역해

유튜브에 올리는 등 그의 소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강연하는 피터슨.

그는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어제의 자신과만 비교하라”고 말한다. /Andy Ngo


책은 고통으로 가득한 삶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 버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열두 가지 조언이다.

최근 국내 출판계를 장악한 위로형 자기계발서와는 달리 피터슨의 조언은 엄한 아버지처럼 선이 굵고 냉정하다.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라, 당신에게 최고의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만 만나라,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

행복을 추구하기보다는 인생의 의미를 찾으라고 강조한다.


이중 남성성을 강조한 11번째 법칙 '아이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탈 때 방해하지 말고 내버려 두어라'가 눈길을 끈다.

피터슨은 젊은 남자들이 억압받고 있다며 이렇게 썼다.

"가부장제 혜택을 누리는 수혜자로서 남자들의 업적은 노력하지 않고 얻은 것으로 치부된다.

야망 때문에 지구를 망치는 약탈자이자 비뚤어진 성 문화 지지자로서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을 받는다."


그는 남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낮은 이유

"남자아이는 경쟁을 좋아하고 순종을 싫어하는데 학교란 순종을 가르치려는 목적으로 설립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남성이 학교 내 경쟁에서 여성에게 뒤처지는 현상은 결국 여성에게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여성은 자기보다 좋은 직장을 가지고 지위가 높은 남자를 배우자로 원하는데,

그런 남성의 수가 줄면 똑똑한 여성이 배우자를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이란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이 들으면 대경실색할 이야기지만

피터슨은 "아이를 갖게 되면 활동에 제약이 생기는 여성으로서는 자신과 아이를 부양할 능력을

지닌 사람이 필요하다"면서"이런 선택은 생물학적 요인에서 비롯됐지만 무척 합리적인 대처 방식"이라고 한다.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싶다면 처벌을 망설이거나 피하지 말라'는 제5법칙은 자녀와 친구처럼 지내고 싶어 하는

요즘 부모들 감각과도 어긋날지 모른다.

피터슨은 "친구의 권위는 잘못을 교정하는 데 한계가 있다. 당신 자녀의 훈육은 당신이 맡아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그 책임을 냉혹하고 무정한 세상에 떠넘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보수적이고 엄격한 내용으로 가득한 책이지만 마지막 부분에 닿을 무렵 가슴이 뭉클해진다.

피터슨은 자신이 왜 현실을 고통이라 여기게 되었는지 털어놓는다.

소아 류머티스성 관절염에 걸려 10년 넘게 투병하는 딸 때문이다.

통증을 견디다 못해 실신하며, 발목 절단 위기까지 맞는 딸을 보며 피터슨은 깨닫는다.

"인생의 힘든 순간을 겨우 지나오면서 내가 터득한 비결 하나는 시간 단위를 아주 짧게 끊어서 생각하는 것이다.

다음 주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하면 우선 내일만 생각하고, 내일도 너무 걱정된다면 1시간만 생각한다.

1시간도 생각할 수 없는 처지라면 10분, 5분, 아니 1분만 생각한다. 사람은 상상 이상으로 강인하다."

혹독한 아픔을 겪어낸 아버지의 절절한 쓴소리, 그것이 아마도 이 책이 지닌 진정한 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