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11.03)
셀던의 중국지도 티머시 브룩 지음/ 너머북스/ 420 p/ 2만8000원. '하버드 중국사 시리즈'의 책임 편집자인 중국사학자 티머시 브룩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가 한 장의 지도에서 중국과 세계의 역사를 풀어낸다. 지도는 2008년 발견된 17세기 중국 지도. 자바에서 활동한 중국 상인을 위해 제작했다. 기증자 존 셀던의 이름을 따 '셀던의 중국지도'라 불린다. 저자는 영국 런던의 학자들과 중국 해안도시 상인 사이의 연결을 밝혀내며 17세기 세계무역 중심지는 남중국해였다고 말한다. | |
사진, 그리고 거짓말/ 주기중 지음/ 아특사/ 352 p/ 2만원. 사진 공부의 시작은 사람의 눈과 카메라의 눈이 다르다는 점을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사진은 빛의 변화인 시간과 공간의 전략적 선택이다. 아침 빛과 저녁 빛이 다르며, 계절에 따라 공간은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 중요한 것은 소재가 아니다. 좋은 사진의 핵심은 같은 대상을 어떻게 바꿔놓느냐에 달려 있다. 사진이란 찍는 이의 의도가 개입된 '거짓말'이다. 좋은 사진을 찍는 방법을 알려준다. | |
김동훈 지음/ 민음사/ / 1만8000원. 우리는 왜 특정 브랜드를 선호하는가. 어떤 브랜드가 어떤 지점에서 나의 취향을 만족시키는지 살펴보면 나의 무의식이 무엇을 욕망하는지 알게 된다고 말한다. 명품이 불필요한 소비일 때는 사치이지만 필요한 소비일 때는 취향이 된다. 정체성, 감각과 욕망, 주체성, 시간성, 매체성, 일상성으로 챕터를 나누고 프라다·지방시· 스타벅스·베르사체·샤넬·페라가모·티파니 등 32가지 브랜드를 고찰한다. |
한 장의 ‘중국 지도’가 들려주는 남중국해의 야망
(한겨레 2018-11-02 황상철 기자)
저명 중국사 학자 티머시 브룩
2008년 발견 17세기 ‘셀던 지도’
누가 어디서 왜 제작했는지 추적
지도엔 영토분쟁 지역 축소돼 눈길
셀던의 중국 지도-잃어버린 항해도, 향료 무역, 그리고 남중국해
티모시 브룩 지음, 조영헌·손고은 옮김/ 너머북스/ 420 p/ 2만8000원
2008년 영국 옥스퍼드대 보들리언 도서관 수장고에 묻혀 있던 ‘이상한’ 지도가 발견됐다.
지도를 유증한 동양학자이자 변호사 존 셀던(1584~1654)을 기려 이름 붙여진 ‘셀던 지도’였다.
그의 소장품들은 1659년 9월 도서관에 도착했다.
셀던은 가로 96.5㎝, 세로 160㎝ 크기의 이 지도를 ‘중국 지도’라고 썼다.
지명은 한자로 쓰였고, 항구와 항구 사이엔 선이 그어져 있다.
지도는 서쪽으로 인도양에서 동쪽으로 향료제도(말루쿠제도)까지, 남쪽으로는 자바섬에서 북쪽으로 조선,
일본까지 담고 있다. 명나라 때 중국 지도들은 중앙에 대륙을 넣고 그밖의 지역을 주변부에 그렸는데, 이 지도의
중앙은 남중국해다. 중국 대륙이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은, 육지가 바다의 주변부로 밀려난 매우 특이한 지도다.
즉, 중국 지도가 아니다. 유사품도 없다.
<셀던의 중국 지도>는 이 한 장의 지도에 얽힌 이야기로 채워졌다.
지은이는 <하버드 중국사> 시리즈의 책임편집자이자 저명한 중국사 연구자인 티머시 브룩(67)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 교수로, “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 이 특별한 지도가 만들어졌는지에 관한 비밀”을 캐보려 한다.
탐험은 지도가 발견된 영국에서 시작된다.
17세기 영국은 네덜란드와 치열한 무역경쟁을 했다.
네덜란드는 “어떤 나라도 바다에 대한 독점적 관할권을 주장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견해는 국제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휘호 흐로티위스(1583~1645)가 대표했다.
셀던은 하원의원 때 찰스 1세 국왕에 맞서다 감옥에 갇힌 뒤 보호관찰을 받았는데 <닫힌 바다>의 출간을 조건으로 풀려났다.
여기서 셀던은 “바다는 토지처럼 사적 지배 혹은 재산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특정 바다에도 주권을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브룩 교수는 셀던에게도 해양법과 국제법을 만든 영예가 흐로티위스와 동등하게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셀던의 중국 지도. 항구와 항구 사이에 선이 연결돼 있다. 조선은 지도 윗부분에 길쭉하게 그려졌다. 너머북스 제공
셀던은 새롭게 떠오르던 동양학 학자이기도 했다. 히브리어와 중앙아시아 언어를 알았다.
중국어는 몰랐지만 동양의 지식이 담긴 문서가 앞으로 세상을 바꿀 지식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으로
저자는 추론한다. 셀던의 이런 인식과 해양법에 대한 관심이 그의 수중에 지도가 들어간 배경이지 않느냐는 얘기다.
보들리언 도서관에 간 지도는 28년이 지나서야 유럽어로 번역될 수 있었다.
난징 출신으로 벨기에 선교사를 통해 기독교를 받아들인 마이클 심(심복종)이 1687년 옥스퍼드에 6주간 머물며
도서관 관리인과 함께 중국어 문서들을 목록화했다. 그는 지도의 지명을 번역하고 주석을 달았다.
중국인 기독교도 마이클은 유럽의 스타였다.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젓가락 잡는 모양을 보려고 그를 저녁식사에 초대했고, 그 자리엔 교황도 참석했다.
영국의 제임스 2세는 마이클의 초상화를 그리라고 왕실 초상화가에게 명령했다.
몇해 뒤 마이클은 중국으로 돌아가는 배에서 숨졌다.
17세기 후반 동양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낮아지고, 지도는 잊혀져 갔다.
셀던은 “좋은 조건의 보상금에 지도를 반환하라는 압력을 받고도 내어주지 않았을 영국인 사령관”한테서 지도를 얻었다는
말을 남겼다. 사령관은 동인도회사가 아시아에 파견한 원정대를 이끈 사람을 뜻한다.
그래서 저자는 영국·네덜란드·포르투갈·스페인이 각축을 벌이던 남중국해로 탐험을 떠난다.
영국에 들여온 일본의 첫 음란물을 소각하고, 일본에 거주하며 중국 관료들에 선을 대줄 수 있다는 중국인을 믿고
거금을 빌려줬다가 떼이기도 하면서, 유럽인들이 추구한 목표는 중국과 거래를 트는 것이었다.
명나라는 이를 용인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남중국해 무역을 장악하면 막대한 부를 거머쥘 것이라는 점은 분명했다.
남중국해는 욕망의 바다였고, 셀던 지도는 그 산물이었다.
티머시 브룩 교수가 2015년 1월 고려대에서 열린 해외석학 초청 강연회에서 강연하고 있다. 너머북스 제공
지은이는 중국인의 남중국해 진출을 다룬 중국 자료와 메르카토르 도법의 탄생 등 유럽에서 진행된 해도의 발전을 살피면서
셀던 지도의 비밀에 육박해 들어간다. 셀던 지도 윗부분에는 나침도가 있고, 그 밑에 눈금자가 그려져 있다.
저자는 “지도에서 가장 이상한 것”이라고 한다. 중국 지도들에는 나침도가 나타나지 않는다.
나침도는 유럽 지도의 특징이었다. 셀던 지도 제작자는 유럽의 해도를 모방했을까?
한자로 표기된 일본 지명도 중국에서 쓰던 표기와 다르다.
가고시마는 ‘살신만자(殺身灣子)로 표기됐는데, 실제 가고시마를 쓸 때 사용한 한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지도 제작자가 일본 지명을 ‘누군가’ 발음하는 것을 듣고 표기한 것으로 추론한다.
그러면서 셀던 지도의 6가지 암호를 풀어낸다.
제작자는 중국 대륙에 흥미가 없었고, 4세기 전에 그려진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확하다.
대략 475만분의1 축척을 사용했다. 항로를 먼저 그리고 육지의 해안선을 그렸다.
눈길을 끄는 것은 남중국해의 중앙 부분이 축소됐다는 사실이다.
지은이는 “항해자들이 선호하는 지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들에겐 쓸모없는 곳이었다.
지도는 철저히 상업용이었다. 스프래틀리제도(중국명 난사군도)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셀던 지도에서 축소해 버린 곳이 근래 중국과 미국, 주변국가들이 영토분쟁을 벌이는 지역이다.
중국은 난사군도에 미사일을 배치했고, 미국은 ‘항행의 자유’ 작전을 벌이며 맞선다.
남중국해는 세계 해운 물동량의 4분의 1이 통과한다.
바다에도 주권이 미친다는 셀던의 주장이 이들 국가들의 행태를 합리화하는 논거가 될 수 있지만,
셀던은 영토 점유와 교역에서 ‘평등’이라는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지도는 중국인이 만든 게 확실해 보인다. 그렇다고 중국에서 지도가 제작됐음을 보증하진 않는다.
지은이는 언제, 어디서 지도가 만들어졌고, 어떤 영국인 사령관이 지도를 입수했을지 추론한다.
그래도 물음은 남는다. 누가 이 지도를 제작했을까?
조선은 지도 윗부분에 길쭉한 반도로 그려져 있다. 하지만 항로를 나타내는 어떤 선도 조선에 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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