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11.14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금제 조족, 보물 1921호, 양산 금조총, 동아대박물관.
1990년 4월 13일, 심봉근 교수가 이끄는 부산 동아대박물관 조사단은 경남 양산
북정리와 신기리에서 발굴을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에 조사한 양산 부부총을
다시 발굴하고 그 주변 택지 개발 예정지에 유적이 있는지를 확인해볼 참이었다.
7월 말이 되어 부부총이 있는 북정리 쪽 조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조사원 사이에선
부부총 서남쪽 20m 지점에 있는 돌무지가 적석총인지 아닌지를 둘러싸고
설왕설래했다. 심 교수는 나동욱 조교를 지목해 발굴을 지시했다.
나 조교는 잡목과 근·현대 무덤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홀로 남아 발굴을 이어갔다.
며칠 만에 돌무지가 근래 쌓인 것임을 확인했고 길이 2.8m, 너비 1m 규모의 석실을 찾아냈다.
무덤 속엔 흙이 반쯤 채워져 있었고 교란된 것처럼 보였다.
흙을 제거하다가 토기 한 점을 발견한 나 조교는 작업을 계속해 잠시 후 은제 허리띠와 자그마한 금구슬 여러 개를
찾아냈다. 이어서 그가 발견한 금귀걸이 한 쌍은 신라 귀걸이 가운데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명품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금동관과 금팔찌, 청동 다리미가 차례로 출토됐다. 작업에 몰입하던 나 조교는
처음 보는 유물의 출현에 깜짝 놀랐다.
길이 2.8cm 금제 조족(鳥足)이었는데, 발가락까지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었던 것이다.
심봉근 교수는 조사 결과를 종합해 무덤 주인공을 6세기 초 신라 귀족 여성으로 추정하는 한편, 문화재위원들과 협의해
'금조총(金鳥塚)'이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부부총이 발굴된 후 그 주변이 도굴의 표적이 되었고 근·현대 무덤이 많이
들어서는 와중에도 이토록 온전하게 남아 있었던 것은 천운(天運)이라 하겠다.
양산 부부총 발굴 유물이 모두 일본으로 반출된 현 상황에서
금조총 출토품은 오늘도 고대 양산 지역의 문화를 홀로 묵묵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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