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2018.11.03. 08:24
나무꾼은 사슴이 일러준 대로 산속 선녀탕에 몸을 숨겼다. 오, 정말이네. 과연 하늘에서 날개옷을 입은 선녀들이 내려왔다. 나무꾼은 멱 감는 틈을 타서 한 선녀의 날개옷을 훔쳤다. 이윽고 시간이 되자 선녀들이 하늘로 돌아가고, 날개옷을 도둑맞은 막내 선녀만 혼자 울고 있었다. 나무꾼은 오갈 데 없는 막내 선녀를 제 집으로 데려가서 아내로 삼았다. 이제 사슴이 경고한 유의사항만 남았다. 세 아이를 낳기 전까지 날개옷을 깊이 감추자.
선녀와 나무꾼 설화는 우리나라는 물론 아시아와 유럽에 널리 전해지는 옛이야기다. 원래 나무꾼에게 선녀는 꿈에 그리는 존재다. 황홀한 미모와 고운 마음씨, 그리고 고귀한 신분까지…. 현실에서 맺어질 리 없는 판타지 캐릭터가 아닌가. 반면 선녀에게 나무꾼은 악몽이다. 목욕 장면을 훔쳐보는가 하면 절도 행각으로 결혼에 이르니까. 이 사기극을 계획한 사슴도 알고 보면 소름 끼친다. 그 순진하고 맑은 눈망울로 얍삽한 흉계를 꾸미다니.
어쨌든 정의는 구현되기 마련이다. 아이 둘을 낳은 선녀 아내는 구경이나 해보자며 날개옷을 보여 달라고 한다. 지가 뭘 어쩌겠어, 하면서 나무꾼은 날개옷을 꺼내 주는데 선녀는 잽싸게 입더니 두 아이의 손을 잡고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나무꾼은 선녀탕 두레박을 타고 따라 올라가기도 하지만 늙은 어머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상에 남는다. 결국 그는 수탉이 되어 아침마다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나. 사기결혼의 슬픈 종착역이다.
만약 나무꾼이 날개옷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동명 웹툰 원작의 드라마 ‘계룡선녀전’은 이 설화를 모티브로 삼되 발칙한 상상을 버무린다. 아들딸 낳은 선녀가 날개옷의 행방을 묻기도 전에 나무꾼이 죽은 것이다. 문제의 날개옷은 영영 못 찾을지도 모른다. 그 뒤 699년이 흐르고 바리스타로 변신한 선녀는 나무꾼의 환생을 기다리는데….
그렇다면 선녀와 나무꾼 설화를 역사에서는 어떻게 재해석할 수 있을까? 한국사에는 수많은 혼인동맹이 나오는데 이 가운데는 사기결혼도 적지 않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역사 속 나무꾼들은 선녀보다 그녀의 날개옷을 탐냈다는 것이다. 그 원조 사례가 바로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과 그에게 배반당하고 새로운 나라를 찾아 길을 나선 소서노 이야기다. 선녀는 어째서 나무꾼을 떠났을까?
소서노는 졸본의 여성 세력가였다. 졸본은 오늘날의 압록강 유역을 말하는데 기원전 1세기 무렵 소국들이 ‘도토리 키 재기’ 식으로 난립하고 있었다. 큰 나라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작은 세력들이 얼마 안 되는 자원을 놓고 쟁탈전을 벌인 것이다.
이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외부 유력자를 영입해야 했다. 소서노는 북부여 출신의 우태와 결혼했다. 하지만 남편은 치열한 세력다툼 끝에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과부가 된 소서노는 비류와 온조 형제를 키우며 힘겹지만 꿋꿋하게 작은 나라를 이끌었다.
그 무렵 동부여의 왕족 주몽이 금와왕의 자식들과 다툼이 생겨 오이, 마리, 협보 등과 함께 졸본으로 도망쳐 왔다. 이 나무꾼은 선녀탕을 훔쳐보듯 졸본의 속사정을 엿보았다. 과부 소서노의 땅과 백성은 탐나는 날개옷이었다. 날개옷은 선녀를 선녀답게 만드는 아이템이다. 주몽은 그 땅과 백성 때문에 소서노가 선녀처럼 보였을 것이다.
주몽의 출현은 소서노에게도 가뭄의 단비와 같았다. 이 야심만만한 청년과 그를 믿고 따르는 정예군만 있으면 다른 소국들이 넘보지 못할 테니까. 소서노는 자신의 날개옷인 땅과 백성을 혼수로 맡기고 주몽과 부부의 연을 맺었다.
이 결혼은 토착세력과 신흥세력의 혼인동맹이었다. 주몽과 소서노는 졸본과 인근 소국들을 평정하고 기원전 37년 마침내 고구려 건국을 선포했다. 주몽의 군사력과 소서노의 정치력이 어우러진 합작품이었다.
단단할 것 같던 이 혼인동맹은 그러나 얼마지 않아 금이 갔다. 부여에 두고 온 주몽의 아들 유리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원래 소서노는 주몽이 국왕 노릇을 하다가 죽으면 자기 자식인 비류나 온조가 왕위를 잇는다는 구상을 했을 터. 그것이 땅과 백성을 내주는 대신 굳게 약속한 거래조건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이 나무꾼은 멋대로 유리를 태자로 삼으려고 했다. 소서노는 저항했지만 군사력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선녀의 ‘걸크러시’가 폭발한다. 왕위계승을 마음대로 결정하자 주몽과 결별했다. 부부의 연만 끊은 게 아니라 아예 고구려를 떠나 버렸다. 새 나라를 찾아 길을 나선 것이다.
소서노를 따르는 무리는 청천강과 대동강을 건너 남쪽으로 향했다. 맏아들 비류는 미추홀, 오늘날의 인천에 자리 잡았다. 둘째아들 온조는 한강 유역의 위례성에 터를 닦았다. 어머니 소서노가 든든하게 뒷받침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중에 비류가 죽고 미추홀 세력이 합류하면서 온조는 위례성을 도읍 삼아 백제를 건국한다(기원전 18년). 소서노의 결단이 고구려에 이어 백제를 낳은 것이다. 실제로 백제에서는 그녀를 국모로 숭상하며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 소서노의 넋이 깃든 위례성은 지금의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 몽촌토성 일대로 추정된다.
소서노는 주몽과 함께 고구려를 창업했지만 남편이 변심하자 잘 먹고 잘 살아라, 하고 차버렸다. 이 역사 속 선녀는 날개옷에 연연하지 않았다. 땅과 백성은 자기 힘으로 다시 일구면 그만이다. 그 독립심과 개척정신이 한성백제 탄생의 밑거름이었다. 덕분에 소서노는 한국 고대사의 남성 창업자들보다 지분이 더 많은 여성 최대주주가 되었다.
날개옷은 선녀를 선녀답게 만들지만, 매달리면 오히려 선녀다움을 잃는 역설의 아이템이다. 현대의 선녀와 나무꾼들, 부부와 연인들에게도 날개옷이 있다. 사기 치다가 걸리면 국물도 없다. 단, 우리네 인생에는 날개옷보다 소중한 게 적지 않다. 선녀와 나무꾼, 완벽한 타인들이 만나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만 해도 얼마나 경이로운 축복인가.
권경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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