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歷史·文化遺産

이한상의 발굴 이야기] [52] 왕릉에 함께 묻힌 사람들

바람아님 2018. 11. 21. 09:14

(조선일보 2018.11.21 이한상)


장경호(長頸壺), 지산동 44호분, 경북대 박물관.장경호(長頸壺), 지산동 44호분, 경북대 박물관.


1977년 12월 1일, 윤용진 경북대 교수와 김종철 계명대

교수는 학생들과 함께 경북 고령 지산동 산 위에서

고분 발굴을 시작했다. 정부가 추진하던 가야 문화권

유적 정화 사업에 지산동 고분군 봉분 보수 건이

포함되었기에 훼손이 극심한 고분 2기의 내부 구조를

확인해 봉분 보수 작업에 참고할 예정이었다.

윤 교수팀이 44호분을, 김 교수팀이 45호분을 맡아 조사에

들어갔다. 토층 확인용 둑을 남기고 파 들어가니 무덤

한가운데에 예상대로 주인공의 유해와 부장품을 안치하려고

만든 큰 석실이 있었다. 그 주변을 조심스럽게 파 들어가자

자그마한 석곽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44호분에서 석곽 32기, 45호분에서 11기가 확인됐다.

토층 조사에서 석실과 석곽이 동시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밝혔고, 이어진 조사에서 소형 석곽에 묻힌 인물들이

순장자라는 증거를 보강해 나갔다.


석실과 석곽 내부는 도굴당했는데도 다량의 토기와 함께

철제 무기와 마구가 쏟아졌다. 석실과 석곽에서 출토된

토기는 한 사람이 만들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흡사했다.

44호분 출토품에는 백제에서 들여온 청동 그릇,

오키나와산 야광패(夜光貝)로 만든 국자 조각이 포함돼 있었다.


윤 교수는 소형 석곽에서 출토된 인골에 대한 감정을 경북대 의대 해부학교실에 의뢰했다.

44호분에서 수습한 인골 22구를 감정한 결과는 놀라웠다.

대부분 20~30대 남녀였지만 50대 남녀와 10대 이하 여아도 포함돼 있었다.

한 석곽에 남녀가 포개어 묻히기도 했고 여아 2인이 합장된 사례도 있었다.


조사단은 발굴 결과를 종합해 44호분이 대가야 왕릉이자 순장묘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발굴된 무덤이 바로 왕릉이었고 그 속엔 사후에도 왕을 모시기 위해 함께 묻힌 시종 수십 명의 유골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기록에 남아있지 않은 가야 사회의 순장 풍습은 이처럼 우연한 계기에 확인됐다.

최근 발굴 성과를 통해서 순장은 대가야뿐만 아니라 금관가야와 아라가야에도 존재했다는 사실도 밝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