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歷史·文化遺産

[이한상의 발굴 이야기] [53] '祭物'로 쓰인 통일신라 쟁기

바람아님 2018. 12. 5. 11:17

(조선일보 2018.12.05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1999년 6월 12일, 한신대박물관 이남규 관장과 권오영 교수, 조대연 학예사 등은 경기 용인 언남리의 야트막한 산자락에서

발굴을 시작했다. 그곳에 신축 예정이던 아파트 부지에서 다량의 유물이 채집되었기에 유적의 존재 여부를 확인해볼 참이었다.

겉흙을 제거하자 조선시대 백자 조각들과 함께 곳곳에서 시커먼 흙이 채워진 구덩이(竪穴) 윤곽이 드러났다.

몇 기를 파보았으나 특별한 유물이 나오지 않아 통상의 조선시대 유적이라 추정했다.

구덩이 지름은 2m 내외였고 깊이도 얕은 편이었다.

철제 보습과 볏, 언남리 유적, 한신대박물관.
철제 보습과 볏, 언남리 유적, 한신대박물관.


며칠 후 구덩이 하나에서 예상치 못한 유물이 쏟아졌다.

보습(犁), 괭이, 낫, 도끼, 자물쇠와 자물통, 재갈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어 주변의 다른 구덩이에서도 철기가 출토됐다.

바닥면의 한쪽 벽에 치우쳐 우경(牛耕)에 사용하는 보습과 그것의 부품인 볏 여섯 세트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인위적으로 매납한 양상이었다. 보습 가운데엔 길이가 50cm에 달하는 것도 있었다.


연이어 출토되는 철기 때문에 당초 7월까지였던 발굴 기간도 8월로 넘어갔다.

발굴이 끝날 무렵 철기를 헤아려보니 300여 점이나 됐고 보습은 15점이었다.

그때까지 국내에서 발굴된 통일신라 보습 전체보다 많은 숫자였다.

함께 나온 토기와 기와로 보아 통일신라 말기에 묻힌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조사단은 이 유적이 철기를 만들던 곳이 아닐까 추정했지만 끝내 제철 관련 용해로나 단야로가 확인되지 않아

다른 가능성을 고려하기로 했다.


농사에 써야 할 귀중한 농기구, 특히 잘 만든 보습과 볏 여러 세트를 땅속에 묻은 이유는 쉽게 설명하기 어려웠다.

고심 끝에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하나는 풍년을 기원하며 제물로 묻었을 가능성이고,

다른 하나는 전쟁의 와중에 중요한 철제 농기구들을 땅속에 묻고 피신했을 가능성이었다.

최근 통일신라 제사 유적에서 보습을 비롯한 농기구를 묻은 사례가 속속 확인되고 있어

언남리 유적의 성격 해명을 위한 실마리가 되고 있다. 




주석 :

보습 -
농업 쟁기, 극젱이, 가래 따위 농기구의 술바닥에 끼우는, 넓적한 삽 모양의 쇳조각.
농기구에 따라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볏  -
농업 보습 위에 비스듬하게 덧댄 쇳조각. 보습으로 갈아 넘기는 흙을 받아
한쪽으로 떨어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