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歷史·文化遺産

[세계타워] 화장 위기 처한 '파평윤씨 母子 미라'

바람아님 2018. 12. 3. 08:13

세계일보 2018.12.02. 20:57


현행법상 미라 문화재 취급 안 해/
발굴 때만 반짝 관심 후 나 몰라라/
희귀 임신부 미라조차 방치 실정/
박물관 세워 후속 보전조치 절실


고려대 구로병원 병리학교실 김한겸 교수는 우리나라 미라연구의 권위자다. 2002년 세계 최초의 임신부 미라인 ‘파평윤씨 모자(母子)미라’부검을 지휘한 고병리학자다. 최근 인터뷰 차 만난 그에게서 기가 막힌 얘기를 들었다. 이 병원 장례식장 옆 부검실에 400∼500년 된 미라 4구를 ‘임의로’모셔놓고 있다는 것이다. 미라는 현행법으로는 문화재가 아니라 오래된 시신에 불과하다. 그래서 발굴한 미라는 조사가 끝나도 문화재 당국에서 모셔가지 않는다. 전적으로 발견자나 연구자에게 그 처리를 맡기는데, 대체로 보전할 수가 없어 화장해버린다. 그 역시 부검을 의뢰받은 미라는 조사 후엔 화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나 미라는 먼 옛날 조상의 삶을 알 수 있는 타임캡슐이나 다름없는 데다 누구보다 그 가치를 아는 학자 양심에 도저히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10년 가까이 병원 눈치를 보면서 부검실 한쪽에 모셔 놓고 애태우고 있다.


부검실에는 2010년 경기도 오산에서 발굴된, 16세기 중반에 살았던 여흥이씨의 첫째 부인과 둘째 부인 미라가 있다. 전문적인 보전처리가 되지 않다 보니 곰팡이가 스는 등 훼손되고 있다. 그는 “발견 당시는 금으로 수놓은 옷을 입고 10cm 두께의 관에 누워 있을 정도로 화려했지만, 발견 후엔 옷과 장신구 등 부장품은 박물관에서 다 가져가 버려 발가벗겨진 채 사실상 방치돼 있다”며 “연구자로서 죄송한 마음뿐”이라고 했다. 

박태해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파평윤씨 모자미라는 안암동 고려대 의대 해부학 실습실에 있다. 452년 전에 숨진 20대 중반의 여인이었던 이 미라는 흔치 않은 출산 중 숨진 미라다. 사망 후에도 사내아이를 고스란히 뱃속에 간직한 세계 유일무이한 미라다. 미라박물관을 만들어 보전·전시해야 한다는 여론은 많으나 이 미라 역시 대책 없이 방치되고 있다.

흔히 ‘미라를 과거에서 온 메신저’라고 한다. 당시의 질병은 물론 생활상을 밝힐 수 있는 소중한 단서이기 때문이다. 미라는 저마다 보전 가치가 충분하다. 그런데 정부는 미라에 대한 국가 차원의 보전·관리를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전시·교육하는 박물관은커녕 전문 연구소 하나 없다.


파평윤씨 모자미라 등 학술적 가치가 있는 미라는 발굴 당시엔 문화재 당국도, 언론도 관심을 보이나 조사가 끝난 후에는 이들의 처리에 대해선 나 몰라라 한다. 그러다 보니 소리소문없이 화장되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국내 처음으로 유전자 분석을 통해 사인이 동맥경화로 확인된 17세기 여성 미라(진성이낭)도 화장 처리돼 세상에서 사라졌다.


외국에선 어떨까. 이탈리아 정부는 5300년 전 미라 아이스맨 ‘외치’가 1991년 알프스 산맥 빙하에서 발견되자 전담 연구소를 만들어 지금도 빙하와 똑같은 기압과 온도에 보관하고 있다. 외치를 전시 중인 볼자노 사우스 티롤 고고학박물관은 관광명소가 된 지 오래다. 중국 후난성 창사시에는 1971년 마왕퇴 동산에서 발견된 ‘마왕퇴 미라’ 보존 박물관을 두고 있다. 김 교수를 비롯한 미라 전문가들이 2000년대 중반부터 문화체육관광부나 국립중앙박물관에 미라 보전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했다. 그런데도 문화 당국에선 여전히 ‘법이 없다’ ‘규정이 없다’는 소리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국회 문광위원을 지낸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미라들의 ‘기막힌 운명’을 알고 있다. 하나 장관이 된 뒤에도 아무런 말이 없다.

“저는 미라 연구자이지 보전 전문가가 아니잖아요. 어느 장관에게는 직접 설명까지 했는데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어요. 미라를 보전할 수 있는 박물관 하나 만드는 게 ‘누리호’ 시험발사하는 것보다 더 어렵나요.”


문화재청은 올 초 국내 미라 현황을 파악해 현재 59구가 출토됐다고 확인했다. 현재 어디서 어떻게 보관돼 있는지 모를 턱이 없지만 후속 보전 조치는 감감무소식이다. 김 교수는 “2년 후에 제가 정년을 하면 우리 병원에 있는 미라 8구도 아마 다 화장될 수밖에 없다. 더는 책임지고 맡을 사람이 없다”고 개탄했다. 정부도 언론도 세계적인 가치가 있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언급했던 파평윤씨 모자미라도 이대로라면 화장될 운명이다.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박태해 문화체육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