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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국민연금, 덜 내고 더 받을 수 있다'는 게 가짜 뉴스다

바람아님 2018. 12. 3. 10:59

(조선일보 2018.12.03 윤희숙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지금 세대는 낸 보험료의 2~4배 많이 국민연금 받고
2057년 이후 젊은 세대는 소득의 30%를 보험료로 내야


윤희숙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윤희숙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차마 양심에 찔려 하기 어려운 일도 무리 지어 있을 때는 훨씬 쉽다.

집단의 에너지는 놀라운 잠재력으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지만 때로는 어리석고 비열하다.

거짓 정보에 휘둘리는 일도 드물지 않다. 그래서 국민 눈높이라는 것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비전을 제시하고 소통하며 국민이 좀 더 멀리 넓게 볼 수 있도록 이끄는 게 정치의 역할이다.


지난 11월 7일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을 담은 복지부안이 청와대에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개 반려됐다.

행정부 내부 사안에 불과한데도 공개 반려라며 널리 알린 것을 보면 복잡한 정치 셈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액면 자체는 간단하다.

현재 연금 수급액을 충당하기 위한 보험료는 소득 대체율 10%당 대략 4%이다.

한 세대 전체로 보았을 때 소득 대체율 40%를 감당하기 위한 보험료가 16% 수준이다.

즉 소득의 40%를 은퇴 후에 국민연금으로 받으면서 이후 세대에게 부담을 넘기지 않으려면, 지금 소득의 16%를 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세대는 9%만 국민연금 보험료로 낸다.

그런 후 저소득층은 낸 돈의 4배, 고소득층은 1.9배를 연금으로 받는다.


문제는 이렇게 높은 수익이 행운의 복권이 아니라 누군가를 피해자로 만든다는 것이다. 우선 적립금이 조기에 바닥난다.

적립금은 고령자 비율이 낮을 때 쌓아놨다가 고령자가 많을 때 지출함으로써 각 세대의 부담을 같게 만드는 버퍼이다.

그런데 보험료가 너무 낮기 때문에 이 버퍼가 필요 규모보다 훨씬 조금 모인 후 빨리 동나게 된다.

고갈 시점으로 예측되는 2057년 이후의 젊은 세대는 대체율 40% 연금을 받기 위해 소득의 약 30%를 내야 한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에게 부담을 미뤄버리는 것도 치사스럽지만, 제도의 존립 가능성도 위험해지니,

세대 간 공정성만 문제가 아니다.

미래 세대가 바보가 아닌 이상, 민간 보험을 들어 16% 보험료로 누릴 수 있는 혜택을 위해 30%를 선뜻 낼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뻔히 문제를 예측했음에도 앞 세대가 이기심만 챙긴 결과이니, 이를 감당하라고 강제할

논거도 약하다. 결국 이미 고령인 사람을 제외하고는, 현 세대 역시 지금의 제도 틀 속에서 연금을 안정적으로

받을 것이라 자신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덜 내고 더 받는 묘수가 있다는 감언(甘言)이 판을 친다.

선진국도 적립금 없이 운영하고 있으니 마음 편하게 이를 고갈시키고 미래 세대만 보험료를 더 내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구 선진국은 고령화가 우리보다 훨씬 완만해 충격이 덜하다.

또한 전후 유례없는 호황과 유리한 인구 구조 속에서 미래를 못 내다보고

적립금을 다시 쌓지 않은 안이함은 연금사(史)의 최대 실책으로 꼽힌다.

그들이 후발국에 반복해온 충고는 '우리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이다.


소득 대체율 50% 주장을 보험료 논의와 섞는 것 역시 논점을 흐린다.

핵심 이슈는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기지 않는다는 것, 즉 현 세대와 미래 세대의 부담이 다르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연금액을 높일지는 그런 후의 고민이다. 연금이 많아진다는데 싫어할 이는 없다.

단 소 득대체율 50%를 위해서는 보험료가 20%까지 올라야 한다는 정보를 정확히 제시하면서

국민 대다수가 정말 그것을 원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더 많은 연금만 바라고 보험료 인상은 거부하는 것이 정말 국민 눈높이인지도 불분명하지만,

만일 그렇다 해도 그것을 무작정 따르느라 제도를 무너뜨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각 대안에 어떤 위험이 따르고, 공정성과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찬찬히 설명하는 게 먼저다.


역설적이게도, 복지부안이 반려된 것은 그런 의미에서 환영할 만하다.

복지부안이라 알려진 보험료 인상률만으로 어떻게 재정 안정이 가능한 것인지 전문가들도 이해 불가였기 때문이다.

차제에, 미래 세대의 부담만 늘리면 만사형통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뭔지, 정부의 구체적 재정 안정방안은 무엇인지

철저하고 끈질기게 논의해보자.


요즘 국민연금을 믿으라는 영상 광고가 기차역에서 종일 방송되고 있다. 믿으라는 정부가 믿기지 않으니 착잡하다.

연금 제도는 착취당한다고 느끼는 세대가 없어야 유지되는 법이니 세대 간 불균형을 시정하지 않고서는 믿을 만하다고

단언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안 발표가 코앞이다. 공정과 적폐 청산을 모토로 내건 정부가 세대 간 공정성을 외면하고

제도 붕괴를 방기하는 표리부동을 행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