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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脫원전 자가당착 보여준 '체코 발언'

바람아님 2018. 12. 1. 07:19
문화일보 2018.11.30. 12:00


탈(脫)원전 대한민국의 원전 수출 전선에 빨간불이 켜졌다.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의 운영업체 나와(Nawah)가 최근 프랑스전력공사(EDF)와 10년간 1000만 달러 규모의 운영·유지를 위한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한국의 UAE 원전 독점 운영권이 위협받고 있다. 게다가 원전 수출의 우위에 있는 듯했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영국의 원전 수주 경쟁에서도 불리한 입장으로 바뀌었다.


대만(臺灣)에서는 탈원전 대세론이 깨졌다. 지난 24일 치러진 대만의 국민투표 결과, 2025년까지 원자력 발전의 중단을 규정한 ‘대만 전기사업법 제95조 1항의 폐지’에 관한 안건은 59%의 국민이 폐지 찬성에 표를 던졌다. 에너지 정책에서 ‘대세’라는 주장은 맞지 않는다. 대만 국민이 탈원전 정책 법안 폐기를 지지했다는 사실은 주요 신문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에너지와 관련한 학회와 야당은 국민의 의견을 다시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는 “대만 사례는 우리와 다르다”며 이를 일축한다.


57개 대학의 210명 교수로 구성된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는 최근 국민의 의사를 확인하고 에너지정책에 반영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한국원자력학회가 실시한 두 차례의 설문조사 결과 70%가 원자력 발전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는 가치 중립적인 기관이 한 여론조사가 아니라고 했다. 이에 원자력학회가 공동 여론조사를 제안했으나 묵묵부답이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를 상기해 보자. 지역·연령·성비 등을 고려해 표본 추출된 2만여 명에 대한 최초 설문조사에서부터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재개를 원하는 응답자가 9%포인트 더 많았다. 또, 현재의 원전 비중 유지나 확대를 원하는 응답자가 4.6%포인트 더 많았다. 그러나 정책 당국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


오히려 공론화위원장이 만든 원전 비중 축소 등의 권고 보고서를 ‘에너지 전환 로드맵’이라는 국무회의 보고 안건으로 바꾸고, 이를 제8차 전력수급계획과 제3차 에너지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기초로 삼아 버렸다. 의회에서 입법을 통해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고 국민투표를 통해 의견을 확인한 대만의 사례에 비춰본다면,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주장하는 정권이 할 일은 아니다.


원전을 수입하는 대만의 경우 탈원전은 전력망에서 원전 비중만 달라지지만, 국산 원전을 수출까지 하는 우리는 부품 공급망, 중공업, 건설 등 원자력 산업의 붕괴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이에 대한 정부의 답변은 탈원전은 점진적이라는 것이다. 원전 수는 점진적으로 줄어들지 몰라도 원자력산업은 급격히 붕괴한다.


원전 수출은 지원한다는 정부의 답변도 석연찮다. 탈원전 정책을 펴는 나라의 원전을 어느 나라가 사겠는가? 그런데도 지난 28일 체코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안드레이 바비시 총리와 회담 때 “한국은 현재 24기의 원전을 운영 중인데, 지난 40년간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고 했다 한다. 하지만 이는 안전성을 이유로 탈원전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취지를 스스로 허무는 자가당착 발언이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에서 드러난 민심, 전문가들의 의견, 설문조사에 나타난 국민 목소리, 대만 사례에서 드러난 탈원전 정책의 허구성, 지구온난화를 1.5도 이하로 억제하기 위해 원전을 늘려야 한다는 유엔 정부간 기후변화 협의체(IPCC)의 권고를 정부는 왜 듣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