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은 환경 분야에서도 의미 있는 해였다. 예년보다 유난히 더웠던 그해 6월 23일 40대 후반의 한 과학자가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지구온난화가 이산화탄소와 다른 온실가스에 의해 강화된다고 99% 확신할 수 있다”는 충격적인 발언을 한다. 그의 증언은 이튿날 ‘지구온난화가 시작됐다’는 제목으로 뉴욕타임스 1면을 장식하는 등 기후변화 전반에 대한 광범위한 관심을 끌어냈다. 파리기후변화협정 역시 연원을 따지면 그의 역사적인 증언에 맞닿아 있다. 그는 훗날 ‘기후변화 선지자’로 불린 나사(미 항공우주국) 소속 기상학자 제임스 핸슨 박사였다.
현재 팔순을 바라보는 핸슨은 수많은 기후변화 관련 연구논문을 발표하는 한편, 지난 2013년 워싱턴에서 오일샌드 파이프라인 건설 반대 시위를 벌이다 체포되는 등 환경 운동에도 동조적인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그는 원자력 발전에 대해 찬성한다.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활용에도 적극 찬성하지만, 그것만으로 워낙 빠르고 거세게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기후변화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본다. 핸슨이 제시하는 해법은 탄소세를 점진적으로 올리고 안전이 확보된 원자력발전소를 크게 늘리자는 것이다. 핸슨뿐만이 아니다. 환경운동단체 그린피스 내 주요 활동가였던 패트릭 무어, 가이아 이론을 발표해 환경 분야에 큰 영향을 끼친 제임스 러브록 등도 기후변화 대응 차원에서 원전을 지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의 원전 반대 환경단체 ‘참여과학자 모임(UCS)’이 원전 찬성으로 입장을 바꿔 관심을 끌었다.
효과적인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부득이하게 원전을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최근 힘을 얻고 있다. 미국 MIT 에너지 이니셔티브는 최근 원전 관련 보고서를 통해 ‘현재 작동 중인 전세계 원자로 수명을 연장시키는 것이 발전 분야에서 탄소 배출량 증가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저렴한 접근 방안’이라고 밝혔다. 미국 일리노이·뉴저지·뉴욕주(州) 등에서 광의의 탄소 제거 전략의 하나로 노후 원전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영국은 낡은 원전을 새것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탄소 제거 정책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프랑스 역시 원전 폐쇄 결정은 탄소 제거 정책과 연계해 고려키로 했다. 대만 유권자들도 투표를 통해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주로 선진국을 중심으로 기존 원전 유지 혹은 신규 원전 추진 정책을 채택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과학잡지 사이언스는 “원전은 현존하는 유일한 저탄소 조절 가능 에너지원”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역시 원전이든 뭐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할 입장이지만, 문재인 정부는 유독 탈(脫)원전 정책에선 완고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으로선 뼈아픈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흐름이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탈원전 정책 고수가 그렇게 큰 의미가 있을까. 대세에 늘 순응할 필요는 없지만 흐름을 잘 살필 이유는 충분하다. 옹고집은 훗날 많은 대가를 요구받는 법이다. 손절매할 적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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