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배연국칼럼] 부디 귀만은 막지 마라/<시론>언제까지 '쇼통'에 기댈 건가

바람아님 2019. 1. 19. 09:39

[배연국칼럼] 부디 귀만은 막지 마라

세계일보 2019.01.17. 23:43


文대통령의 민심 역주행은 /

억지와 고집 버리지 않은 탓 /

곳곳에 삐걱대는 소리 나는데도 /

고치지 않으면 붕괴 못 면할 것


이제 겨우 20개월이다. 50년 견딜 튼튼한 집을 짓겠다던 정권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권부의 핵심에서 기강이 무너지고, 서민의 살림살이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위기의 원인을 놓고 숱한 말들이 오가지만 사태의 진앙은 불통이다. 예나 지금이나 민심의 소리에 귀를 막으면 반드시 위기가 찾아오게 마련이다. 이런 생각으로 한비자의 글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옛날 한비자가 살던 시절에 우경이란 재상이 집을 지었던 모양이다. 공사를 하기 전에 목수가 우경에게 조언을 했다. “서까래는 생것이고 흙은 축축합니다. 재목이 생것인 경우에는 굽어지고 흙이 축축하면 무거운 법입니다. 굽은 재목으로 무거운 흙을 지탱하면 집이 완성된 후에 오래 가지 못하고 무너질 것입니다.” 우경이 손사래를 쳤다. “아닐세. 서까래는 마르면 반듯해지고, 흙이 마르면 가벼워지네. 집이 완성되어 흙과 재목이 마르게 되면 날이 갈수록 가벼워져 오래되어도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네.” 목수가 어쩔 수 없이 우경의 말대로 집을 지었으나 집은 얼마 못 가서 무너지고 말았다. 전문가의 충고를 듣지 않고 밀어붙인 결과였다.
배연국 논설위원

오늘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일과 어찌 이리도 똑같은가.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영업자들이 사지로 내몰리고 있는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정책 방향엔 문제가 없다고 한다. 지난주 신년 기자회견에선 “시간이 걸리고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아예 대못을 박았다. 잘못된 정책 기조를 그냥 둔 채 기업인들을 만나 투자를 닦달한다. 마치 허약한 서까래 위에 무거운 흙을 얹는 격이다. 청와대 참모들은 문제가 생기면 “경제 체질 변화에 수반되는 통증”이라고 우긴다. 시간이 지나면 흙과 재목이 말라 가벼워질 것이라던 우경 재상의 억지와 빼닮았다.


소통정부를 표방한 정권에서 불통의 비판이 나오는 것은 이런 외곬 행보와 무관치 않다. 소통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귀를 여는 것에서 출발한다. 초록 동색의 사람끼리 의견을 주고받으면 생각의 환류가 일어날 수 없다. 충분한 분석과 토론 없이 나온 대안을 최선이라고 믿는 집단사고의 폐해가 나타나기 십상이다. 버젓이 일탈행위를 저지르고도 합리화하거나 엉터리 정책을 밀어붙이는 일이 빈발한다. 요즘 집권세력에 자주 발병하는 내로남불 증상 역시 여기서 비롯된다.


물은 언제나 높은 곳에서 낮은 데로 흐른다. 소통도 이와 같다. 자기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존중의 정신이 전제돼야 한다. 상대를 적폐로 간주하면 그의 말이 내 귀에 들어올 리 없다. 나만 옳다는 무오류의 환상에 빠지면 자신의 잘못을 고칠 기회가 영영 사라진다. 오류가 지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일방통행식 국정이 심해지고 상대와의 대립과 갈등이 그치지 않는 이유이다.


이런 분열적 증상을 치유하려면 유아독존의 사고를 버려야 한다. 일찍이 공자는 소통의 조건으로 무의(毋意), 무필(毋必), 무고(毋固), 무아(毋我)라는 네 가지를 강조했다. ‘자기 뜻대로 하려는 자의가 없고(무의), 기필코 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고(무필), 억지로 강행하려는 고집이 없고(무고), 생각이나 주장에 사사로움이 없어야 한다(무아)’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문 대통령의 소통방식은 공자와는 거리가 멀다. 4무(無)보다는 4유(有)에 가깝다.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진의 뇌에는 정의감과 우월감이 가득하다. 이런 선민의식은 자기 생각을 기필코 관철하겠다는 독단과 오기를 부른다. 억지와 고집이 활개 치고,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치고, 사사로움이 고개를 든다. 급기야 집권세력이 외쳤던 “이게 나라냐”는 소리가 다른 쪽에서 나오는 지경이다.


대통령이 꿈꾸는 나라는 취임사에서도 약속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이다. 하지만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데도 끝내 고치기를 거부한다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태’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행히 시간은 있다. 삐거덕 소리가 난다는 것은 집이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는 증거다. 부디, 귀만이라도 막지 마라.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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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언제까지 '쇼통'에 기댈 건가


문화일보 2019.01.18. 12:10



주목받는 탁현민 사의 표명
“밑천 다 드러났다”며 휴가

약발 떨어진 이벤트식 政治
기업인 줄 세우기式 간담회

기자 들러리 세운 기자회견
이젠 成果 보여야 공감 얻어


역대 청와대를 통틀어 한 행정관의 존재감이 이렇게 높았던 적은 없는 것 같다. 탁현민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은 지난 7일 사표를 제출하고 10일 문재인 대통령 신년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휴가를 떠났다. 이미 지난해 6월 사의 표명을 했을 때 당시 임종석 비서실장이 ‘첫눈이 내릴 때까지만 일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고 11월 24일 첫눈이 내리자 야당은 일제히 그의 사표 수리를 주장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탁 행정관보다 임 실장이 먼저 청와대를 떠나는 아이러니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그는 “바닥이 났고, 밑천도 다 드러났다”면서 이번에는 누가 만류해도 떠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이젠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설 듯하다.


여성 비하 논란으로 청와대 입성 때부터 여성단체와 여성가족부 등에서 사퇴 주장이 있었지만 문 대통령은 그를 놓지 못했고, 되레 그를 사퇴시키라는 장관만 먼저 물러났다. 지금까지 형성된 문 대통령의 ‘선하고 의리 있고 소통하는 이미지’가 대부분 탁 행정관의 탁월한 기획력 덕분이라는 데 여권 핵심의 누구도 이견이 없다. 지난 판문점 1차 남북 정상회담의 ‘도보 다리 회담’과 3차 평양 정상회담, 각종 기자회견, 공식 행사 등이 모두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오죽했으면 야당에서 “청와대에서 딱 한 사람 가져오라면 무조건 탁현민”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비슷한 이벤트가 반복되면서 문 대통령의 선한 이미지는 독선(獨善), 의리는 내 사람만 쓰는 아집, 소통은 ‘쇼통’으로 드러나면서 ‘약발’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80%에 이르던 지지율이 40%대로 추락한 것이 객관적인 수치다.


문 대통령은 연초 들어 ‘혼밥’ ‘불통’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2일 중소기업회관에서 신년인사회를 가진 것을 시작으로 7일 청와대에서 200여 명의 중소·벤처기업인을 초청해 간담회를 열었다. 이어 10일에는 청와대 출입기자 200명이 모인 가운데 타운홀 미팅 방식의 신년기자회견을 했고, 15일에는 130명의 대기업 및 대한상의 임원을 청와대로 초청해 ‘2019 기업인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이들 행사 모두 문 대통령이 주연(主演)이고 기업인이나 기자들은 조연에 불과했다. 이런 장면들은 ‘문 대통령이 여론과 기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소통하고 있구나’하는 효과를 노렸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이번 행사들을 보면 모양은 조금 다르지만 언젠가 본 듯한 기시감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15일 대기업 회장 초청행사만 해도 한진, 부영, 대림을 제외한 대기업 회장 전원이 한자리에 모여 65분간 대통령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고 하는데 난센스다. 대화는 10명이 넘어가면 현실적으로 힘들다. 이런 모임도 한두 마디 하다 보면 끝이 나는데 130명이 무슨 대화를 나누겠는가. “요즘 반도체 경기가 어떠냐”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느냐”는 등 추상적이고 의례적인 대화만 오갈 수밖에 없다. 특히 기업의 애로 사항은 이미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의 말처럼 기업의 의견을 수렴해 수십 차례 정부에 전달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대통령이 필요하다면 몇몇 대기업 총수를 따로 만나든지 개별 면담을 하면 될 일인데 무슨 토크쇼 하듯이 바쁜 총수를 전부 불러 놓는 것이야말로 구시대적이다. ‘함께 잘사는 대한민국’이라고 쓰인 텀블러를 하나씩 받아간 회장들은 이 문구가 무엇을 압박하는지 눈치챘을 것이다. 불가피한 해외 출장 때문에 CEO가 참석하지 못한 일부 회사는 벌써 뒷말이 나오는 것도 비정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자동차 빅3 CEO,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정보기술(IT) 기업 CEO 5명, 록히드마틴 등 12개 주요 대기업 CEO 등 경제 이슈 중심으로 관련 업종 CEO 몇 명만 불러 구체적인 사안을 놓고 ‘진짜 간담회’를 했다. 문 대통령도 한 번에 모든 기업을 다 만날 것이 아니라 수시로 업종별, 이슈별 기업인들을 만나 실질적인 대화를 나누고 해결책도 제시해야 한다. 현장 목소리를 듣기만 할 뿐 정책 수정 의지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지난해 1월 문 대통령은 ‘내 삶이 달라진다’는 문구가 적힌 백보드를 배경으로 신년기자회견을 했지만 1년이 지난 뒤 똑같은 장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선 “무슨 자신감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입을 굳게 다물었다. 탁 행정관의 사의와 함께 쇼는 끝이 났다. 이젠 성과만이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