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歷史·文化遺産

[이한상의 발굴 이야기] [62] 가장 아름다운 금 귀걸이

바람아님 2019. 3. 6. 17:23

(조선일보 2019.03.06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1915년 7월 6일 도쿄대 교수 세키노 다다시(關野貞) 일행은 경주 보문리에서 발굴을 시작했다.

발굴 대상은 명활산성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 위에 자리한 고분 가운데 하나였다. 그곳은 키 작은 소나무

몇 그루만 자라는 민둥산이었고 산자락 곳곳엔 마을 사람들이 쓴 오래지 않은 무덤들이 들어차 있었다.


금 귀걸이, 국보 90호, 보문동 합장분, 국립중앙박물관.
금 귀걸이, 국보 90호, 보문동 합장분, 국립중앙박물관.


측량을 마친 다음 봉분 서쪽부터 파 들어갔다.

흙을 조금 걷어내자 무덤 천장을 덮었던 돌들이 동서로 열을 이루며 드러났다.

세키노 일행은 동쪽 끝이 석실 입구일 것으로 여겨 그곳을 통해 안으로 진입하기로 했다.

겹겹이 쌓인 돌을 하나둘 제거하자 조금씩 빛이 스며들며 석실은 1400여 년 만에 속살을 드러냈다.


석실 안을 살피니 관대(棺臺)와 석실 입구가 보였다. 파 들어간 곳이 석실 입구가 아니었던 것이다.

관대 위엔 무덤 주인공의 뼛조각들과 함께 관 손잡이, 금동 및 은팔찌가 있었고 석실로 진입할 때 무너져 내린

흙무더기 아래에서 금 귀걸이 한 쌍이 발견됐다. 귀걸이 표면에 금실과 금 알갱이를 가득 붙여 화려하게 꾸민 것이었다.


이어 봉분 중앙을 파 들어가니 적석목곽묘(積石木槨墓) 1기가 있었고 그 속에서 금동관, 금 귀걸이, 장식 대도 등

수많은 유물이 쏟아졌다. 세키노 일행은 부장품을 기준으로 석실을 아내 무덤, 적석목곽을 남편 무덤으로 추정하며

이 무덤을 '보문리 부부총'이라 부르기로 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2011년에 이 무덤 발굴 보고서를 간행하며

무덤 주인공이 부부라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학계의 견해를 수용, '보문동 합장분'이란 새 이름을 붙였다.


보문동 합장분은 6세기 중엽 경주에 살던 신라 사람들이 조상 대대로 써온 무덤 양식을 버리고 석실묘를 새롭게 수용하던

시절에 만들어진 무덤이다. 그리고 석실 출토 금 귀걸이는 일찍이 미술사학자 고유섭 선생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금 귀걸이'라 찬탄한 이래 줄곧 신라 황금 문화를 상징하는 명품으로 주목받았고 1962년 귀걸이 가운데 처음으로

국보 반열에 오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