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歷史·文化遺産

[이한상의 발굴 이야기] [63] '국제무역항' 늑도

바람아님 2019. 3. 13. 07:22

(조선일보 2019.03.13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1985년 10월 1일 부산대박물관 신경철 연구원은 안재호·전옥년 등 후배들과 함께 경남 삼천포(현 사천)의 작은 섬,

늑도에서 발굴을 시작했다. 1979년 유적의 존재를 처음 인지한 후 여러 차례의 지표조사를 통해 다량의 유물을

수습하였기에 유적의 정확한 성격을 밝혀볼 셈이었다.


점토대토기, 늑도유적, 부산대박물관.

점토대토기, 늑도유적, 부산대박물관.


배를 타고 늑도로 이동한 다음 조개무지와 토기가 집중적으로 분포한 몇 곳을 선정해 차례로 파 들어갔다.

첫 지점에선 겉흙을 조금 걷어내자 조개무지가 나타났고 그 아래에서 둥글거나 네모난 집자리 여러 기가 드러났다.

토기 가운데는 입술 부위에 점토 띠를 덧붙여 만든 것이 많았고 철기도 몇 점 출토됐다.

다른 지점에선 어린아이를 묻은 옹관묘, 성인이 묻힌 토광묘가 여러 겹으로 겹친 채 발견됐다.


1986년 가을 신 연구원이 한국고고학 전국대회 석상에서 '늑도는 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유적이며 기원전 1세기 무렵의

국제 교역 중심지였을 것'이라 설명하자 학회에 참석한 학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학계에선 한반도 남부 지역이

언제쯤 철기시대로 진입했는지, 일본 열도와의 관계는 어떠했는지에 관한 후속 연구가 이어졌다.


1998년 이 유적이 도로공사 부지에 포함되자 여러 기관이 나누어 발굴했다. 지금까지 이 유적에서는 건물지 289기,

무덤 174기, 구덩이 397기와 함께 제철 관련 시설이 확인됐으며 출토된 유물은 수만 점을 헤아린다.

현지에서 만든 토기가 주종을 이루지만 중국 한(漢)나라 양식의 토기와 청동 유물, 일본 야요이(彌生) 시대 토기가

다량 포함되어 있어 글로벌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간의 발굴과 연구를 통해 남해안의 작은 섬 늑도가 고대 동아시아 교역의 거점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늑도에 자리한 항구의 경우 지금은 물고기잡이 배들이 드나드는 곳이지만

그 옛날엔 연안을 따라 항해하던 여러 나라 선박들이 기항하던 곳이었고 동아시아 각지에서 온 상인들이

어울리며 자신들이 가져온 물품을 사고팔던 무역항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