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3.20 허윤희 기자)
조선 중기 사대부 오희문, 임진왜란 중 썼던 일기 '쇄미록'
국립진주박물관서 완역본 출간
'쇄미록'
'명나라 병사들이 끊임없이 오가며 소주와 꿀, 병아리 등의 물건을 찾는 일이 많고
조금만 여의치 않으면 큰 몽둥이로 마구 매질하며 고을 수령까지 모욕했다.'
조선 중기 사대부 오희문(吳希文·1539~1613)이 1594년 6월 4일 쓴 일기 한 대목이다.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으로 인해 피폐해진 사회상이 드러난다. 명나라 군대가 참전해
조선군과 연합해 전과를 거뒀지만, 당시 조선의 백성은 명나라 군사들의 횡포를 피할 수
없었다. 오희문은 '난리가 벌어지지 않는 날이 없으니, 그 괴로움을 견딜 수가 없다'고 썼다.
국립진주박물관이 출간한 '쇄미록'〈작은 사진〉 완역본(전 8권)은 오희문이
1591년 11월 27일부터 1601년 2월 27일까지 9년3개월간 기록한 일기를 번역한 것이다.
2017년 시작한 '임진왜란 자료 국역 사업'의 첫 성과물이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원문 탈초본이,
해주오씨 문중에서 한글 번역본이 출간된 바 있으나 번역본은 절판돼 일반 독자들이 쉽게 접할 수 없었다.
임진왜란 때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이 평양성을 탈환하는 모습을 그린 ‘평양성 전투도’. /국립진주박물관
'쇄미록(瑣尾錄)'이란 제목은 '자잘하며 보잘것없는 이, 떠돌아다니는 사람이로다'라는 '시경(詩經)' 구절에서 따와서
자신의 임란 피란 생활을 빗댄 것이다.
이 일기의 진가는 정사(正史)에서 볼 수 없는 이면의 역사에 있다. 특히 의병(義兵)에 대한 오희문의 평가는 냉정하다.
그는 1592년 9월 1일 일기에서 의병이라는 이름으로 숨어 관곡이나 축내는 자들을 비판한다.
'먼 지역에 물러나 움츠린 채 양식만 축내고… 이름만 의병일 뿐 사실은 도망쳐서 죄를 얻은 관군들이 처벌이나 면하려는
수작인 셈이다.' 반면 김면·곽재우처럼 제 역할을 하는 의병에 대해서는 '이들이야말로 의병의 이름에 걸맞다'며
찬사를 보냈다.
최영창 관장은 "오희문은 양반 가문의 일원이자 고통받는 나라의 백성으로서 16세기 양반과 노비의 관계, 전쟁의 참상 등
생활상을 실감 나게 기록했다"며 "난중일기, 징비록과 함께 임진왜란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라고 했다.
불로그에서 같이 읽을 거리 : |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36] 기다려도 오지 않던 明軍의 속사정 (조선일보 2019.03.22) 전쟁과미술] 임진왜란 전세 뒤바꾼 전투, 한눈에 생생 묘사 (국방일보 2015.0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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