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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國에서 본 한반도>실패한 혁명은 혁명 아니다

바람아님 2019. 3. 28. 07:36
문화일보 2019.03.27. 14:20
지난 2월 한 시위 현장에 동시 등장한 촛불과 태극기. 문재인 정부 들어 일상화한 사회 갈등의 한 단면이다. 연합뉴스

신기욱 스탠퍼드大 교수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
근대혁명 실패한 경우 더 많아
촛불이 시민혁명 될지 미지수
文정부 행태는 실패 우려 키워


모처럼 방문한 고국에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촛불 현장에서의 열정이나 새 정부 출범 초기에 가졌던 기대감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전체적으로 움츠러들어 있었고, 상호불신과 정치·이념적 양극화, 그리고 현재에 대한 냉소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커진 듯싶었다. ‘촛불 혁명’은 고사하고 문재인 정부 이후 과연 한국이 더 나라다운 나라가 됐는지 자문하는 사람이 늘었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사회·정치 혁명은 근대의 중요한 산물이다. 그러나 세계사적으로 혁명적인 시도나 기회는 많았지만,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온 경우는 많지 않았다. 오히려 혁명적인 변화를 통해 더 나은 사회를 갈망했던 대중의 열정과 염원은 소수 지도자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이용만 당하고 ‘배신’으로 끝난 사례가 수두룩하다. 20세기만 해도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캄보디아의 폴 포트, 이란의 아야톨라 호메이니 등이 혁명을 통한 새로운 사회 건설을 추구했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아랍의 봄’ 역시 민주적 변화에 대한 국민의 염원을 실현하는 데 실패했다.


돌이켜보면 한국에도 해방 이후 3번의 혁명적 변화의 기회가 있었다. 1960년의 4·19, 1980년의 ‘서울의 봄’ 그리고 1987년의 6월 항쟁이다. 하지만 1960년과 1980년은 군사 쿠데타를 가져왔고 1987년은 정치인들 간의 타협으로 소위 ‘87체제’를 만드는 데 그쳤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사회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의 ‘위로부터의 혁명’이었다. 2016∼2017년의 촛불은 모순투성이인 87체제를 바꾸고 법치주의에 기반한 성숙한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국민의 염원이 표출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또한, 경제·정치·이념적 양극화를 좁히고 상생과 통합의 사회에 대한 바람이었다. 하지만 현 집권세력은 이러한 국민의 바람을 자신들의 20년 집권 플랜으로 바꿔버렸다. 문 정부는 구세대를 청산하고 한국사회의 주류를 바꾸겠다고 공언하며 전방위적으로 적폐청산의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었다. 하지만 인적 청산에 몰두하다 보니 제도적인 개혁은 미풍에 그치고 있다. 두 전직 대통령과 대법원장을 구속하고 재판에 넘겼지만, 오히려 민주사회의 근간인 법치주의가 도전받고 있는 실정이다. 자신들이 원하는 재판 결과가 안 나왔다고 집권당 의원들이 사법부를 공격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광경이다. 제도적 개혁이 없는 인적청산은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가져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게 될 것이다.


문 정부가 공언했던 검찰개혁은 사라지고 오히려 더욱 막강해진 검찰을 만들었다. 전·현직 정책 실무자들에 대한 과도한 책임 추궁과 처벌은 공무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실력보다는 이념적 충성도가 더욱 중요해지면서 프로페셔널리즘이 무너지고 있다. 이념의 대립은 더욱 심해졌으며, 진보뿐 아니라 보수 세력도 거리로 나서고 있다. 국회에는 처리되지 못한 법안들이 쌓여가고 각종 집단이기주의가 판치고 있다. 사회적·정치적 양극화는 경제적 양극화 못지않게 심각해지고 있지만 이를 제도적으로 풀 수 있는 개혁조치는 찾아보기 어렵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선거제도 개혁도 87체제의 산물인 5년 단임제의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권력 구조를 그대로 놔두고 하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연동형을 도입해 다당제가 성립되면 그 의도와는 달리 대통령과 여당에 맞설 수 있는 강한 야당이 나타나기 어려워 견제와 균형은 더욱 힘들어질지 모른다. 촛불의 염원을 혁명으로 이뤄내려면 정치적 이해타산을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하버드대의 정치사회학자인 시다 스코치폴 교수의 ‘혁명은 성공한 경우에만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주장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세계가 주목한 촛불 시민혁명은 실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고 그 책임은 문 정부가 져야 한다. 2017년 6월 집권 초기 87%에 육박하는 지지율로 핵심지지층을 이루던 20대 남성들이 2018년 12월에는 29.4%로 최저를 기록하며 핵심 반대층으로 돌아선 점을 결코 간과해선 안 된다. 집권 후반기를 맞는 문 정부는 전열을 가다듬어야 한다. 1년 후 총선이라는 정치 일정을 감안하면 성과를 낼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 마음이 급하더라도 과욕을 부리지 말고 정치, 경제, 사회, 안보 등 각 분야에서 작은 개혁이라도 이루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혁명보다 개혁이 더 어렵다고 한다.


혁명적인 기회가 왔지만 혁명으로 이어지지 못한 경우도 많았고, 반대로 혁명은 아니었지만 성공한 일련의 개혁으로 혁명적인 결과를 낸 경우도 있다. 촛불이 21세기 세계사의 중요한 시민혁명의 한 획을 그을지는 후반기 문 정부의 개혁적 성과에 달려 있다. 실패한 혁명은 혁명이라 부를 수 없다. 촛불 혁명도 예외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