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2019.03.29. 23:03
‘청자상감국화모란유로죽문매병 및 죽찰’(보물 제1783호)은 2010년 충남 태안군 마도 앞바다에서 발굴한 것이다. 대나무로 만든 막대기(죽찰)에는 여러 글자가 쓰여 있었는데 그중 ‘樽’(준)과 ‘眞’(진)이라는 글자를 통해, 고려시대 사람은 이렇게 생긴 그릇을 ‘준’이라고 불렀으며, 참기름을 담아서 이동하는 데 사용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그릇 자체가 가진 아름다움도 인상적이지만, 당시 사람들이 부른 명칭과 쓰임새를 알려 주는 유물이라는 가치를 인정받아, 2012년 보물로 지정됐다. 문화재 지정 가치의 일면을 볼 수 있다.
문화재는 옛사람의 흔적이다. 어떤 무늬가 어떤 기법으로 새겨져 있는지 하는 정보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어디에 사용했던 것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전시회 개최 등 국민에게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문화재 정보를 제공할 때 지금처럼 ‘국화, 모란, 버드나무, 갈대, 대나무 등을 상감 기법으로 새긴 청자 매병’이란 의미의 이름, 설명도 좋지만, ‘고려시대 참기름을 담았던 단지’라는 사실이 좀 더 강조돼야 할 것이다.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고려 건국 1100주년을 기념해 특별전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이 열렸다. 고려 문화를 대표하는 450여점의 유물이 전시됐고, 17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갈 정도로 성황이었다. 몇 차례 전시장을 찾았는데, 그때마다 찻그릇과 차향이 어우러진 ‘고려시대 찻집 체험 공간’은 관람객의 호응도가 높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유물의 원래 사용처를 알려주려는 전시기획자의 노력에 관람객이 화답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유물의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 전시담당자는 수많은 고민과 치열한 노력을 통해 전시를 기획한다. 점차로 유물 자체에 대한 집중만큼이나 유물을 바라볼 관람객의 궁금증이 무엇인지 읽고 그것을 알려주기 위한 노력도 커지고 있다.
청자참기름병과 차향이 풍기는 체험 공간은 문화재의 가치를 알리고, 국민들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어디에 주안점을 두어야 할지 알려주는 좋은 사례다.
임경희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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