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기의 시시각각] 송현정과 누추한 촛불 민주주의
중앙일보 2019.05.13. 00:12
'독재자' 질문 했다고 군중 공격
지금 군주의 나라에 살고 있나
신문(新聞)은 동사가 아니라 명사다. 독자가 새로운 소식을 듣는 종이 매체가 신문이다. 굳이 동사로서 ‘들을 문(聞)’자 신문을 얘기하고 싶다면 그 주어는 독자다. 독자가 듣는 것이다. 독자에게 새로운 소식을 들려주기 위해 기자는 묻는다. 기자가 묻지 않으면 취재원은 답하지 않는다. 새로운 소식도 나오지 않는다. 기자가 제대로 묻지 않으면 취재원은 건성으로 답하거나 자기에게 유리한 말, 혹은 거짓말부터 하기 일쑤다. 특히 권력자일수록 그렇다. 문재인 정부의 실권자들이 대체로 이런 경향을 띠고 있다는 건 지난 2년간 신물 나게 보아 왔다.
이 총리가 신문기자를 관둔 지 오래서인가. 감이 떨어진 듯하다. 그가 근무하던 언론사의 선후배 기자들은 독재자나 권위주의적인 취재원들에게 직설적이고 공격적으로 묻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나온 권력자의 눈빛과 표정, 태도와 얼떨결에 튀어나온 답변들이 독자가 듣는 새로운 소식이 되었다. 기자가 잘 들어야 하는 이유는 잘 묻기 위해서다. 경청은 수단일 뿐 질문이 목적이다. 이 총리는 이런 사정을 비틀어 훈계조로 송현정 기자를 비난했다. 아니 치열하게 취재하고 질문하는 기자 전체를 욕보였다. 이낙연의 궤변이 문 대통령이나 청와대, 소위 ‘문빠들’한테서 점수를 좀 땄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송 기자는 노무현 대통령 시대 청와대를 출입했다. 이때 청와대 참모였던 문 대통령과 생긴 친분이 특별 대담 인터뷰어로 선정된 배경이라고 한다. 노무현 정부 초기의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기개가 넘쳤다. 논리적이며 반문(反問)을 자주 하는 대통령한테 바보스럽게 당하지 않으려면 정책을 숙지해 때론 독하고 곤혹스러운 질문을 던져야 했다. 당시 청와대의 참모들도 보스의 기질을 닮았다. 지금처럼 단톡방을 애용하며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만 골라 하거나 무슨 청와대 국민청원 같은 괴상한 제도를 만들어 종종 집단적 언어폭력에 편승하는 비겁함도 없었다. 송 기자의 정중하면서도 시종 긴장을 자아내는 취재 태도는 개인 스타일이기도 하거니와 기본기가 노무현 청와대를 출입할 때 단련된 것이다. 송현정이 문 대통령과 개인 인연을 넘어 기자로서 물어야 할 것을 묻고, 답이 나올 때까지 여러 각도에서 파고든 자세에 동료 기자로서 안도감을 느꼈다.
송 기자는 “2년 전 문 대통령을 지지한 분과 반대한 분, 지지했지만 철회한 분, 뽑지는 않았지만 지켜보겠다는 분들의 다양한 시선을 담은 질문들을 드리겠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제1야당의 입장에서 보면… 대통령께 독재자라고 얘기하는 것 아니겠습니까”라는 물음이 나온 건 자연스럽고 당연했다. 문 대통령은 자세하게 답변함으로써 시청자 스스로 판단할 기회를 제공했다. 이런 식의 일문일답은 얼마 전 트럼프 대통령과 CNN 기자가 삿대질하면서 싸웠던 미국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자유민주 사회에서 대통령과 기자 사이에 항용 일어날 법한 일이다. 이를 두고 “불량스럽기 짝이 없는 무례한 질문”이라며 송 기자를 공격하는 댓글과 방송사의 사과나 해체를 요구하는 청원이 빗발치고 있으니 우리가 사는 곳이 1인을 태양으로 모시는 군주의 나라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2년이 만족스러운 모양인데,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언론의 자유가 군중 권력에 도전받고 있다. 촛불 민주주의가 누추해졌다.
전영기 중앙일보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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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홍 칼럼] 시작은 창대했으나..
국민일보 2019.05.13. 04:03文, 2년 전 ‘국민 모두의 대통령’ 되겠다고 약속했으나 ‘지지자들의 대통령’ 되고 있어
‘송현정 기자’ 공격에서 보듯 성에 안 차면 무리지어 막말 퍼붓는 열혈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있는 게 문제
2년 전 이맘 때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환호와 갈채가 쏟아졌다. 많은 이들이 그의 말 한마디에 열광했고, 그의 미소에도 감동을 받았다. 문 대통령은 예전 대통령과는 다른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며,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도 컸다. 전임 대통령이 탄핵되는 충격적인 사태 직후여서, 선한 이미지의 문 대통령 인기는 고공행진했다.
지금도 그런 여망은 유효한가. 의견은 나뉠 것이다. 하지만 내로라하는 성과가 거의 보이질 않는다. 미래보다 과거, 협치보다 독선, 통합보다 대결, 겸손보다 오만, 탕평보다 캠코더, 성장보다 분배 등등 부정적 이미지가 고착화되고 있다. 문 대통령 지지 대열에 섰던 적지 않은 이들이 등을 돌렸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언급한 대로 공직사회는 이미 집권 4년차에 접어든 분위기다. 벌써 레임덕 조짐이 보인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이 예전 대통령의 길과 거의 유사한 길을 걷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생길 만하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그 끝은 미미했던 역대 대통령의 길 말이다.
집권세력이 위기의식을 가질 법한데, 아직까지는 아니다. 많은 이들이 정책 수정과 인적 교체를 바라고 있지만, 국정 운영의 기조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자세다. 문 대통령 책임이 가장 크지만, 문 대통령의 열혈 지지자들도 한몫하고 있다. 문재인정부 출범의 일등공신인 그들은 지금도 현 정부의 버팀목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그들 덕분이다. 사정이 이러니 집권세력이 그들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그들에게 문 대통령은 최고의 선(善)이고 문 대통령과 맞서거나 문 대통령을 비판하는 이들은 악(惡)이다. 논리는 필요 없다. 떼로 몰려다니며 과도한 막말과 인격적 모독을 퍼붓기 일쑤다. 헌법에서 보장된 개인의 정치적 의사 표현 권리는 안중에 없다.
그 버릇이 송현정 KBS기자에 대한 도 넘은 공격으로 다시 나타났다. 문 대통령 취임 2주년을 맞아 지난 9일 KBS 대담 ‘대통령에게 묻는다’가 방영된 뒤 송 기자를 집단으로 공격하고 나섰다. ‘사과하라’ ‘무례하다’ ‘대담이 아니라 청문회’라는 비난은 물론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까지 난무했다. 송 기자의 사촌인 아이돌그룹 멤버도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KBS를 해체하자는 주장마저 펴고 있다. 문 대통령과의 1대 1 대담을 진행한 송 기자가 ‘독재자’를 비롯해 문 대통령이 답하거나 듣기 거북한 사안들을 잇달아 묻고, 대통령 답변 도중 말을 끊으려 한 점을 문제 삼은 것이다. 문 대통령이 당황하거나 한숨짓는 장면 역시 그들을 자극한 듯하다. ‘감히 우리 주군에게 예의 없이 질문하고 말을 자르려 하다니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투다.
결과는 어떤가. 불편한 감정이 어느 정도 해소됐을지는 몰라도, 또 그들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부작용이 크다. 집권 후 시간이 흐르면서 ‘문빠’의 홍위병식 행태에 대한 인식이 나빠진 상태다. 그럼에도 몰매를 휘두르는 구태를 반복하고 있다. 패스트트랙 사태 때도 그랬다. 그들에 대한 평가가 더 악화될 것은 뻔한 이치다. 문 대통령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당장, 그들의 소동 때문에 취임 2주년의 주인공인 문 대통령에게 집중돼야 할 이목이 송 기자에게 쏠렸다. 문 대통령보다 송 기자가 주목받는 상황은 그들이 원했던 바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강조한 국민통합을 저해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10일 이렇게 말했다. “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입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오늘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되는 역사로 기록될 것입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적(敵)을 폐(廢)하는 작업을 대대적으로 펼친 게 주요 요인이다. 특정사안을 언급하며 수사를 지시하기도 했다. 자유한국당은 적폐의 본산 정도로 치부됐다. 보수세력의 이야기는 귓등으로 들었다. 나아가 임기가 끝날 때까지 적폐청산이 지속될 것임을 예고했다. 협치와 통합은 거의 물 건너갔다. 걱정스러운 상황이나, 지지자들은 이에 환호하는 중이다. 문 대통령과 지지자들이 한데 어우러져 결국 문 대통령은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아니라 ‘지지자들만의 대통령’으로 나아가고 있다.
참고로, 인터뷰 때 기자의 질문에는 성역이 없어야 한다. 가능한 까다로운 질문을 하는 게 옳다. 기자의 특권이요, 의무다. 그리고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고 했으나 지금껏 언론과의 단독 회견은 KBS와의 대담이 유일하다.
김진홍 편집인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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