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5.11. 03:15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2주년 KBS 대담에서 내놓은 답변들이 대통령이 여태까지 해온 말이나 행동과 어긋나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경우가 적지 않다. 대통령은 사회 원로와의 대화에서 밝힌 '선(先) 적폐 청산, 후(後) 협치' 관련 질문을 받자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면서 "(언론에서) 헤드라인이나 자막을 그런 식으로 뽑고 그것을 근거로 비판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대통령이 "잘 정리됐다"고 했던 당일 청와대 발표문에 따르면 대통령은 "빨리 진상을 규명하고 청산이 이뤄진 다음, 그 성찰 위에서 얼마든지 협치하고 타협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돼 있다. 이 발언을 '선 청산, 후 협치'라고 한 것이 무엇이 문제며 왜 황당한 일이라는 것인가. 황당한 사람은 대체 누군가.
대통령은 적폐 청산에 "우리는 개입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문(文) 정부 100대 국정과제 제1호가 적폐 청산이었고 청와대 지시로 20곳 가까운 정부기관에 만들어진 적폐청산 TF가 수사 대상을 뽑아서 검찰에 넘겼다. 대통령은 수차례에 걸쳐 방산 비리 척결, 박찬주 육군대장 부부 갑질 의혹, 강원랜드 채용 비리 수사 외압 의혹, 촛불집회 계엄령 문건, 김학의 전 법무차관 동영상, 고 장자연씨 사건, 클럽 버닝썬 사건 등 구체적인 사건을 적시하며 철저 수사를 지시했다. 이런 것들이 수사 개입이 아니면 뭔가. 문 대통령은 '개입'이라는 단어를 보통 사람과는 다른 의미로 쓰나.
북 미사일 발사에 대해 대통령은 "한·미 양국에 대한 시위"라고 성격 규정을 했다. 미사일 발사 지점이 남북 군사합의상 '포병 사격훈련 금지구역' 범위 밖이었다며 "합의 위반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번 미사일은 우리 미사일 방어망을 피할 수 있는 신형 무기다. 그런데도 두 차례 미사일 발사가 '지상·해상·공중 등 모든 공간에서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한다는 남북 군사합의 1조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고서 '김정은 대변인'이라는 보도와 발언은 맹비난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경제 인식도 여전했다. 문 대통령은 "G20, OECD 국가 중 한국은 상당한 고(高)성장 국가"라고 했다. OECD 36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 성장률은 2016년 11위, 2017년 12위에서 더 떨어져 지난해 18위에 그쳤다. IMF 외환위기 이후로 가장 순위가 낮았다. 문 대통령은 "청년 실업률이 아주 낮아졌다. 특히 25∼29세의 고용 상황이 아주 좋아졌다"고 했다. 3월 청년 실업률(10.8%)이 1년 전에 비해 0.8%포인트 낮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두 자릿수다. 문 대통령은 "상용 근로직이 많이 늘었다. 노동의 질이 좋아진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주 36시간 이상 일하는 취업자는 33만명이나 줄었고 주 36시간 미만 취업자가 62만명이나 급증했다. 용돈 나눠 주기식 '노인 알바'와 농촌 무임 가족을 빼면 일자리가 격감했는데 이런 말을 할 수 있나.
대통령은 "소득 1분위 노동자와 5분위 노동자의 임금 격차가 역대 최저로 줄었다"며 소득 주도 성장 덕분이라고 했다. 2년간 최저임금이 29.1%나 급등하면서 상당수 저소득층 근로자가 고용 시장에서 밀려나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졌다. 그 결과, 작년에 하위 20% 가구의 소득이 1분기 -8.0%, 2분기 -7.6%, 3분기 -7.0%, 4분기 -17.7% 내리 급감했다. 이들 계층의 작년 4분기 근로소득은 36.8%나 줄었다. 대통령은 직장에 남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득 격차가 줄어든 점만 내세운 것이다. 왜곡이다. 대통령이 이처럼 현실과 거리가 먼 얘기만 계속 하는 이유가 뭔가. 인식의 문제인지, 독특한 언어의 문제인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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