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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의 말과 글] [97] 열정에 대하여

바람아님 2019. 7. 16. 11:15

(조선일보 2019.05.04 백영옥 소설가)


백영옥 소설가백영옥 소설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어떤 일을 선택하는 게 좋을까.

문제는 사람들이 좋아하고 열정을 가지는 일이 대부분 비슷하다는 것이다.

사무실에서 서류 작업을 하거나 현장에서 영업하는 사람보다는 아이돌을 꿈꾸거나 영화

또는 드라마 감독을 꿈꾸는 사람이 더 많다. 최근에는 유튜버 크리에이터가 꿈인 사람도 많아졌다.

이는 많은 사람의 열정이 몰린 레드오션이란 뜻이다.


만약 인생을 두 번 살 수 있다면 이런 선택의 갈등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공평하게 한 번뿐인 삶을 산다.

방송이나 강연에서 열정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내가 하는 얘기가 있다.

열정에 대해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점이 있다는 말이다.


열정이 폭발적이며 뜨겁다는 건 편견일 수 있다. 열정은 오히려 들뜨지 않고 차분한 것이다.

나는 열정을 종종 성실한 '인내심'으로 고쳐 읽는다.

열정은 컨디션이 가장 좋지 않을 때도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차분한 에너지에 가깝다.

작가로 산 지난 14년간의 내 경험을 얘기하면, 신문사나 방송사가 원하는 진짜 인재는 폭발적 천재성을 가진 사람보다

원고 마감을 확실히 지키고, 최악의 컨디션에서도 꾸준한 실력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이제 나는 노력 역시 '재능'이라 고쳐 부르기 시작했는데, 신이 준 가장 큰 재능이 노력이라고 믿게 됐다.


 열정에 대해 새겨들어야 할 말을 한 사람은 심리학자 대니얼 길버트다.

그는 사람들의 관심사가 생각보다 훨씬 더 자주 변하며, 관심사를 과대평가해선 안 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지금 열정을 갖고 있는 분야에만 초점을 맞추면 곧 열정이 식어버릴 분야로 뛰어들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요리에 대한 열정으로 식당을 내는 것과 식당을 운영하는 일은 다르다.

극심한 경영난을 견디며 매일 가게를 열고, 닦고, 손님을 응대하고, 쌓이는 피곤 속에서도 새로운 조리법을 개발하는 일은

열정의 다른 이름인 성실함과 인내심이기 때문이다. 열정의 관건은 쉼 없는 전진과 꾸준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