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9.28 장강명 소설가)
[장강명의 벽돌책] 인간을 이성적이라 여긴 경제학은 실패한다
생각에 관한 생각
장강명 소설가
지난해 발표한 논픽션 '당선, 합격, 계급'에서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김영사)에 나오는
한 일화를 인용했다. 원고를 쓰면서 '생각에 관한 생각'을 몇 번 들춰봤는데 그때마다 한참이나
책장을 넘기며 눈을 떼지 못했다. '역시 명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논픽션 원고를 다듬을 때쯤 '생각에 관한 생각' 개정판이 나왔다.
저자의 논문 두 편과 감수자의 추천사를 더하면서 분량이 728쪽으로 두툼해졌다.
무엇보다 번역을 다시 하면서 글이 훨씬 유려해졌다. 카너먼은 노벨 경제학상을 탄 최초의 심리학자이자 행동경제학의
창시자다. 그리고 이 책은 카너먼이 행동경제학에 대해 쓴 유일한 대중 교양서다.
나심 탈레브는 이 책이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과 동급이라고 극찬했는데, 내게는 그 말이 그리 과장 같지 않다.
다들 알다시피 인간은 그리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다.
고전경제학은 인간을 이성적인 존재라고 가정하기에 현실을 묘사하거나 정책을 세우는 데 자주 실패한다.
경제학자뿐 아니라 인간을 연구하고 관찰하는 이라면 모두 우리 자신의 비이성적인 행동에 당혹감을 넘어
좌절감마저 느끼게 된다. 몇몇 성급한 이들은 급기야 이성 자체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카너먼은 인간이 어떤 상황에서 비이성적으로 행동하는지 분석하고, 그런 비이성적 행동에도 패턴이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빠르지만 거칠고 원시적인 '시스템 1'과 더 정확하지만 느리고 게으른 '시스템 2',
그렇게 두 가지 방식을 함께 사용해 생각한다는 것이다.
두 시스템의 특성이 각각 어떤지, 어느 때 발동하고 어떤 식으로 오작동하는지,
어떻게 길들일 수 있는지는 직접 확인하는 편이 좋겠다.
대학생 정도면 술술 읽을 수 있는 난이도로, 사실 상당히 재미있는 책이다.
책장을 덮을 때쯤에는 인간의 비이성을 드디어 우리가 제대로 다룰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희망도 생기고,
행복을 누리는 법에 대한 뜻밖의 통찰까지 얻을 수 있다.
국내에서는 2012년 초판이 나온 뒤 여태까지 12만 부가 팔렸고, 매년 1만 부씩 꾸준히 나가는 스테디셀러다.
원제는 직역하면 '빠르고 느리게 생각하기'(Thinking, Fast And Slow)인데, 김영사에서는 당초 카너먼이
원고에 가제로 붙였던 제목('Thinking About Thinking')을 국내 번역서의 제목으로 삼았다.
개인적으로는 번역 제목이 원제보다 더 나은 것 같다.
생각에 관한 생각 :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생각의 반란! | |
생각에 관한 생각 (개정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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