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9.21 구본우 기자)
정치적인 식탁
이라영 지음|동녘|256쪽|1만6000원
'홍길동전'을 쓴 조선 중기 문인 허균은 저서 '성옹지소록'에 아버지의 스승인 화담 서경덕의 일화를
담았다. 아내가 엿새 동안 집을 비워 그동안 밥을 한 끼도 먹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지금의 관점에선
황당하지만, 엿새를 굶고도 굶주린 기색이 없는 화담의 '굳건한' 모습에 이야기의 방점이 찍힌다.
우리는 가끔 '세상이 전보다는 나아졌다'는 착각에 빠진다.
적어도 오늘날의 남성들은 아내가 없다고 엿새 동안 밥을 못 해먹을 정도로 어리석지 않으니까.
그러나 우리가 매일 앉는 밥상에는 여전히 차별이 자리 잡고 있다.
여성들은 아내와 엄마라는 이름으로 부엌 노동을 책임진다. 장애인들은 외식 한번 하기 어렵다.
프랑스에서 예술사회학을 공부한 저자가 밥상에 숨어 있는 정치적 함의를 밝혀낸다.
식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다양한 차별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약자를 모든 문제의 원인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장애인이나 노인, 아이가 식당에 나타나면 민폐'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주방 일을 여성의 성 역할로 규정한다.
식탁의 약자는 곧 사회의 약자들이다. 사회가 변하려면 식탁부터 변해야 한다.
필연적으로 페미니즘과 소수자에 관한 이야기로 흘러간다.
책소개<교보문고> 사회가 변하려면 식탁부터 변해야 한다! 우리가 매일 지겹게 마주하는 공간인 식탁을 통해 일상생활 속 차별을 보여주고, 어떻게 하면 누구도 소외받지 않는 식탁을 차릴 수 있는지 고민하는 『정치적인 식탁』. 우리의 가장 익숙한 밥상에는 차별이 둘러져 있다. 식탁은 생존을 위해 먹는 공간이지만, 그곳에서 서 있는 위치는 각자 다르다. 저자는 공기처럼 편안한 관계에 스며든 은밀하고 집요한 권력이 식탁의 약자를 만든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먹기’라는 평범한 일상에 스며든 차별을 가까이에서 살펴본다. 아내와 엄마라는 이름으로 가정 내 부엌노동을 책임지는 여성들, 백인들의 음식을 차리느라 자신들의 요리법을 공식적으로 대물림하기는커녕 백인들의 남부 요리로 자리 잡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흑인들, 외식 한번 하기 쉽지 않은 장애인들, 노키즈존 식당에 입장을 거부당하는 아이들까지. 이는 관계에서 누가 권력을 쥐고 있느냐에 따라 정치적으로 결정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음식이, 식탁이 소외, 차별, 배제의 매개가 아니라 돌봄과 위로, 사과의 매개로서 한 사람의 속을 어루만지는 힘이 되려면 물론 우리가 지금까지 알았던 식탁, 누군가를 익숙하게 차별했던 식탁과는 과감히 작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게 낯설어진 식탁 위에서 우리의 입은 배고픔만을 해결하는 일차원적인 입에서 타자와 말을 나누고 사랑하는 다차원의 입으로 바뀔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매 꼭지마다 미술 작품들이 어우러져 있어 다른 각도에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며 글에 다채로움을 더해준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
저자소개 저자 : 이라영 미술과 예술 경영을 공부한 후 문화 기획과 문화 교육 분야에서 일했다. 개별의 작품보다 작품을 둘러싼 사회구조와 역사에 관심이 많아 프랑스에서 예술사회학을 공부했다. 현재 여러 매체에 기고하며 예술과 정치에 대한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여자 사람, 사람》 (전자책),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 《타락한 저항》 등이 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
프롤로그: 나의 식탁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1장 먹는 여자 내가 남긴 밥을 엄마가 먹지 않아 다행이야 2장 만드는 여자 할머니의 미역줄거리│퍼스트 키친 3장 먹히는 여자 4장 먹는 입 이밥에 고깃국 5장 말하는 입 펜스 룰, 여성을 배척하라│요리를 쓴다는 것│분리된 입 6장 사랑하는 입 소화기 내과 병동에서│특수한 사람│나바호 타코를 먹으며 에필로그: 할머니들을 위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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