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9.21 곽아람 기자)
부모 연금에 기대 살던 미혼 자녀… 부모 사망 후 경제적 기반 상실
가족 전제로 만든 사회 보장 제도, 개인 단위로 다시 설계해야
가족 난민
야마다 마사히로 지음|니시야마 치나·함인희 옮김|그린비|224쪽|1만5000원
2013년 10월 일본에선 어머니의 시신을 콘크리트 속에 넣어 숨긴 다음 어머니 앞으로 나오는
연금을 계속 받은 53세 아들이 징역 2년에 처해졌다.
같은 해 9월엔 동거하던 삼촌의 사망을 숨기고 자기 계좌로 삼촌의 퇴직공제연금을 수령한
41세 여성이 징역 2년 4개월을 선고받기도 했다.
주오대학 사회학부 교수인 저자는 "이러한 유형의 연금 사기 사건이 빈번한 이유는,
연금 대상자였던 부모 사망 후에 예전의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중년 싱글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부모와 동거하며 생계를 의존하는 미혼 자녀를 뜻하는 '패러사이트(parasite·기생충) 싱글'이란 개념을
처음 제시한 인물. 이 책에서도 일본 사회에 만연한 '싱글화(化)'의 문제점을 분석한다.
가족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더불어 자신을 필요로 하고 소중히 대해주는 존재가 없는 사람들을
'가족 난민'으로 규정한 이 책에서 저자는 '중년 패러사이트 싱글'을 가장 우려한다.
이들에겐 부모가 세상을 뜨고 나면 경제적 생활 기반과 심리적 안정의 근거를 상실한 채 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가족 난민' 시기가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이다. "꾸준히 지속된 싱글화의 결과라 할 '가족 난민'은 현재 추세대로라면
2040년에는 부모와 동거하는 중년의 패러사이트 싱글을 중심으로 300만명을 훌쩍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31쪽)
부모 연금에 의존하는 싱글은 부모 사후 극빈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저자는 “기존 사회보장제도를 개인 단위로 재구축해야 한다”고 말한다. /게티이미지
'패러사이트 싱글'은 버블경제 호황기였던 1970년대 중반 처음 등장했다.
여자가 결혼하면 일을 그만두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 남녀 모두 결혼해 생활수준이 상대적으로 하락하는 걸
감수하느니 조금 더 오랜 기간 '여유로운 싱글 생활'을 즐기고 싶어했다. 1990년 전후는 패러사이트 싱글의 황금기였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진 부모 세대는 더 이상 자녀의 월급에 기대지 않았다.
자녀는 귀찮은 집안일을 어머니에게 맡기고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됐다.
그러나 1992년 버블경제가 붕괴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고용 불안정이 심화되면서 '비주체적 패러사이트 싱글'이 증가했다.
결혼 시장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저소득층 남성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영세 자영업자의 미래도 불투명해졌다. 가업(家業)을 이어받는 남자의 아내 자리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게 되자 자영업자의 후계자인 아들도 패러사이트 싱글로 남게 됐다.
저자는 "2010년 부모와 동거하는 중년 패러사이트 싱글의 실업률은 11.5%로 또래 집단의 약 3배에 이른다"고 지적한다.
이혼율 증가도 '패러사이트 싱글'이 늘어난 원인이다.
남편의 실직이나 고용 불안정 때문에 이혼한 여성들이 부모와 재동거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해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무엇보다도 일본 사회가 현재 '정상 가족'으로 규정하고 있는 '표준 가족' 개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후(戰後)형 가족'이라고도 불리는 일본의 '표준 가족'은 남편은 직장에 나가 일하고 아내는 전업주부인 4인 가족을 뜻한다.
정규직 맞벌이 가족은 이보다 상위 모델로 인식된다.
저자는 "연금제도 등 표준 가족 단위로 설계된 사회복지제도를 개인 단위로 재설계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누구나 결혼을 한다는 전제하에 사회보장제도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평생 싱글로 살아가거나 이혼할 경우
사회보장제도의 틀 안에서 지원이 힘들다는 것이다. 한 예로 80세 남편이 병으로 사망했을 때 55세인 전업주부 아내는
생활에 부족함이 없는 유족후생연금을 받을 수 있지만, 80세 홀아버지를 간병해왔던 55세 미혼 딸은 아버지가 세상을 뜨면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인 65세까지 무연금 상태로 살아가야 한다.
셰어하우스 같은 공동주택 도입도 대안이다.
"내 인생에 친한 친구가 몇 명이라도 존재한다면 배우자 이상으로 친밀한 정서적 유대를 만들어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에노 지즈코 도쿄대 명예교수의 주장처럼 '가족신화'에만 기대지 않고 가까운 친구를 만들어 놓아야 한다.
바다 건너 일본 이야기지만, 혼인율이 매년 최저치를 찍고 있는 우리 사회의 미래이기도 하다.
풍부한 통계 자료와 사례를 바탕으로 정교하게 쓰인 책.
그러나 일본 여성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를 "소득이 적은 남자랑 결혼하기 싫어서"라고 단선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점은
남성 학자의 한계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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