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국가번호 82와 '빨리빨리'

바람아님 2019. 10. 6. 07:51
조선일보 2019.10.05. 03:02
어수웅·주말뉴스부장

국제통화에서 한국의 국가번호는 82입니다. 혼자 웃은 적이 있습니다. 한국인의 급한 성미를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어떻게 알았을까 하고 말이죠.

90년대 중반 수습기자 시절입니다. 지금은 골동품 취급을 받지만, 휴대폰 등장 이전에는 삐삐(무선호출기)가 대세였죠. 경찰서 출입기자들을 지휘하는 '시경캡'은 시시때때로 후배들을 호출합니다. 처음에는 물론 점잖게 사회부 대표 번호를 찍었죠. 하지만 그의 인내심은 1분. 전화가 걸려오지 않으면 다시 숫자를 찍습니다. 82. 1분이 또 지나면 그는 네 개의 숫자를 찍었습니다. 8282. 이후 벌어질 전개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도록 하죠. 물론 요즘 스마트폰 세대에게는 '그때를 아십니까'류의 에피소드겠지만.

이번 주 특집으로 '넵'과 '반말의 경영학'이 있습니다. 조직 내에서의 의사소통 트렌드를 보여주는 기획이죠. 특히 후자는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존댓말보다 반말을 선택한 젊은 기업들의 이야기입니다. 취지는 각각이지만, 예외 없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미사여구를 동원하기보다, 속도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 하나 더. 얼핏 보면 '빨리빨리'의 일환으로 보이지만, 스피드를 넘어 정확한 의견 개진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거죠. 2030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빨리빨리는 한국인만의 조급성은 아닙니다. 산업화와 동행하는 개발도상국 대부분 국민의 성미가 됐죠. 하지만 여러 세기에 걸쳐 산업화를 진행한 구미(歐美)와 비교했을 때, 압축된 시간에 이를 완성해내야 했던 우리가 좀 더 심했던 건 사실입니다. 스피드를 얻은 대신 우리는 종종 부정확했고, 가끔은 큰 사고도 감내해야 했죠.

지금은 산업화 이후 시대입니다. '반말의 경영학'을 취재한 후배 기자는 20대. 그의 위트 있는 호명에 따르면 이 기획은 '님님님에서 놈놈놈으로'이기도 합니다. 모든 조직에 가능한 전환은 물론 아니지만,'예의 차리기'에 들어가는 낭비를 최소화하고 속도와 정확성을 최대화하자는 주장이죠.

기득권이 된 386 세대의 비판적 점검과 함께, 밀레니얼 세대의 분투에 귀 기울이는 10월의 첫 주말입니다.


어수웅·주말뉴스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