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 DC의 ‘공공외교’ 거점이었던 한미연구소(USKI) 폐쇄 이후 1년 만에 문재인 정부가 대미 네트워크 사업을 재개했다. 올해부터 예산을 편성, USKI가 둥지를 틀었던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과 조지워싱턴대 한국학연구소 등 2곳에 이미 지원을 재개했다는 사실이 최근 뒤늦게 확인된 것. 관리 주체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서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으로 바뀌었고, 지원사업 목적도 ‘네트워크’에서 ‘한국학’ 지원으로 변경됐다. 예산도 기존의 연간 20억 원에서 18억 원으로 다소 줄었다.
하지만 ‘복원’이라고 규정하기엔 여러모로 부족하다. 먼저, 정부가 지원하고 있는 SAIS와 조지워싱턴대 한국학연구소 2곳은 기존 사업이 진행되고 있었던 곳이다. SAIS의 한국학 프로그램에는 USKI 폐쇄 이후 연구소에 속해 있던 한국학 교수 1명이 이미 옮겨가 있다. USKI 운영에 연간 20억 원이 들었는데, SAIS 한국학 교수 한 자리에 이에 버금가는 18억 원을 지원한다면 가성비가 너무 떨어진다. 조지워싱턴대 한국학연구소도 2017년 1월 교육부 산하 한국학중앙연구원이 100만 달러(약 11억7500만 원) 등 일부 기금을 지원해 설립된 기관으로, ‘중복 지원’ 여부를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USKI가 12년간 한·미의 정·학계 인사들을 위해 제공했던 인적교류의 장(場)을 상실했다는 점이 가장 뼈아프다. 한·미 관계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문제로도 삐걱대는 상황에서 시급한 일은 한·미 간 민·관 네트워크 복원인데, 이번 프로그램에서 이 부분은 빠져 있다. 장기적 차원에서 한국학 지원은 중요하지만, 워싱턴 조야에서 한·미 동맹 의구심과 함께 주한미군 감축·철수론이 커지는 상황에서 당장 필요한 여론 조성에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워싱턴에서 북핵과 관련한 전문가들의 토론을 선도해온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도 USKI 해체와 함께 한국과의 인연이 완전히 끊어졌다. 지난해 5월 예산운용 불투명성을 이유로 USKI를 폐쇄한 문재인 정부의 결정이 ‘교각살우(矯角殺牛)’였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결국, 대미 공공외교 복원이라는 숙제는 기획재정부와 KDI가 아니라 외교부가 주도적으로 풀어야 한다. 외교부는 이미 공공외교 대사 직함 신설에 이어, 지난해 4월 공공외교 전담 국(局)을 신설하는 등 ‘하드웨어’를 갖춘 상태다. 이번 하계 정기인사에서 전문성 있는 인사들까지 포진시키면서 ‘소프트웨어’에서도 역량을 발휘할 준비를 끝냈다. 마침 공공외교 예산 집행을 담당하는 한국국제교류재단(KF)에도 이근 신임 이사장이 지난 9월 취임했다.
주미 대사관도 이번 주 이수혁 신임 대사 부임과 함께 대사급 정무공사에 초대 공공문화외교국장 출신 공공외교 담당 공사가 업무를 개시하면서 제대로 진용을 갖추게 됐다. 이번 계기에 주미 대사관이 지난 5월 외교관의 한·미 정상 통화 유출 파문이라는 상처를 빨리 극복하고, 한·미 간 인식 차를 좁히는 공공외교 최전선으로서의 제 역할을 다하기를 기대한다. 대미 네트워크의 시급한 복원, 이게 새롭게 출범한 ‘이수혁호(號)’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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