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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잃어버린 10년'의 강력한 후보자, 한국 경제

바람아님 2019. 10. 29. 07:51

조선일보 2019.10.28. 03:17


4200일을 낭비한 전·현직 대통령 3명.. 한국은 아직 선택권 있다
과감하게 행동하거나 '잃어버린 10년' 그저 받아들이거나
윌리엄 페섹 칼럼니스트·'일본화(Japanization)' 저자

요즘 경제학자들이 '잃어버린 10년' 후보를 찾으려고 전 세계를 샅샅이 뒤지고 있는데 한국이 그 일을 아주 쉽게 만들고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은 잃어버린 10년 주창자들을 여러 차례 당황케 했다. 2008년 아이슬란드처럼 폭삭 망할 것이라고들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2013년 미국 금리 인상 등으로 신흥국에서 돈이 대거 빠져나가는 테이퍼 탠트럼(taper tantrum·긴축에 따른 과민 반응) 당시에도 한국에 대한 비관론이 컸지만 이 또한 빗나갔다. 작년엔 미·중 무역 전쟁이 시작되면서 한국의 부채는 심지어 '안전자산' 지위를 누리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을 보면, 향후 10년은 거의 성장이 없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한국의 수출 의존형 경제가 심각한 상태를 맞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무역 분쟁과 보호무역주의에 화살을 돌렸다. 하지만 한국의 경제 기득권층도 거울 속 자신을 들여다볼 때가 됐다.


지난 10년간 한국 지도자들은 혁신과 생산성을 높이고 수출에 덜 의존적인 경제를 약속했다. 거대해진 재벌의 역할을 줄이고, 중소기업과 스타트업들이 성장할 공간을 마련해 준다는 것이었다. 2008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에 입성하면서 격변을 예고했지만 개혁은 금방 끝나버렸다. 현대건설 최고경영자 출신인 그가 현상(現狀)을 뒤집어엎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합리적이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성장·고용·분배가 선순환하는 경제 시스템을 약속했다. 그는 몇몇 대기업이 주도하는 성장은 한계가 있다고 확신했다.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0~1970년대에 만든 시스템을 파괴하는 모습에선 '역사적 서사'가 느껴졌다. 어쨌든 박 전 대통령은 가족 경영 대기업 집단의 위상을 꺾는 데까지 가지 못했다. 그는 탄핵됐다.


문 대통령은 경제 모델 민주화를 약속했다. 분수 효과(소득 주도 성장)를 내걸며 유권자들을 흥분시켰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나 아베 일본 총리가 (성장을 통한) 낙수 효과를 지향한 반면, 문 대통령은 법인세·최저임금 인상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는 정신이 다른 데 팔렸다. 북한과 이루는 평화를 중심축에 두는 것은 칭찬할 만했지만 문 정부는 '멀티 태스킹(다중 작업)'엔 서툴렀다.


한국은 김정은과 협상하는 동시에 경제 구조조정도 해야 했다. 문 대통령이 점수판에 2~3승 정도 적을 수 있겠지만, 그의 재임 900일은 개혁이란 관점에선 실망스럽다. 전임 이 대통령과 박 대통령의 3300일도 마찬가지다. 전·현직 세 대통령이 재임했던 4200일을 낭비했다는 뜻이다. 스타트업 붐을 조성하고, 경직된 기업 시스템을 국제화하고, 여성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수출에서 서비스로 성장 엔진을 재조정할 수 있었던 11년 4개월을 날린 것이다.


획기적으로 변화하려면 빨리 행동하는 게 최선이다. 일본 아베 총리와 인도 모디 총리는 정치적 리스크가 있는 업그레이드 조치를 조기에 실행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아베가 관료주의를 줄이고, 중소기업 지원·노동시장 유연화에 재빨리 나섰더라면 일본은 트럼프와 벌인 무역 전쟁에서 덜 취약했을 것이다.


문 대통령에겐 아직 상황 반전을 위한 시간이 남아 있다. 하지만 최근 통계는 경제학자들이 왜 한국의 미래를 우려하는지 잘 보여준다. 9월 소비자 물가는 처음으로 하락했다. 10월의 첫 20일 수출은 1년 전에 비해 19.5%나 줄었다. 일본과 갈등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이 필연적으로 '일본식 디플레이션'으로 치닫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책 실수가 허용되는 범위는 좁아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16일 금리를 1.25%로 내리면서 더 하락할 가능성을 열어놨다. 문 정부가 재정 부양에 나설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경제적 파워의 균형을 바꾸는 것이다. 재벌의 독점적 행태에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반독점 정책 강화는 스타트업이 새로운 부와 일자리, 혁신적 에너지를 창출할 여지를 넓힐 것이다. 세금 우대 조치는 기업들이 수출이 아닌 국내 서비스 부문으로 눈길을 돌리도록 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세금 혜택은 벤처캐피털 산업 육성에도 사용될 수 있다. 여성 인력을 위해 경기장을 평평하게 하고, 더 많은 외국인 인재 유치에도 큰 관심을 쏟아야 한다.


2008년 또는 2013년이나 2017년, 한국이 이런 조치를 내렸더라면 지금처럼 트럼프의 관세 압력에 짓눌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은 아직 선택권이 있다. 지금 과감하게 행동하거나, 아니면 자포자기하고 잃어버린 10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윌리엄 페섹 칼럼니스트·'일본화(Japanization)'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