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0.01.21 팀 알퍼 칼럼니스트)
다양한 유래 英 지명들… 켈트·로마·노르만 등 침략 역사가 배경
발음 곤혹스럽지만 과거 회상에는 그만, 흥미로운 퍼즐 같아
'부산'의 부는 '솥뚜껑' 뜻… 부산 갈 때마다 솥뚜껑 산 찾아
소리글자 한글에 한자까지 곁들인 한국 지명, 경이로움 원천
팀 알퍼 칼럼니스트
영어를 배우는 것이 무척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영국 땅을 밟게 될 때까지 기다려 보자.
미국 사람들조차 영국 일부 지명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 삼 년가량 런던 중심지에서 일했다. 미국인으로 짐작되는 관광객들이 종종 내게
레이체스터 스퀘어(Leicester Square) 위치를 묻곤 했다.
그곳이 레스터 스퀘어로 발음된다는 것은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영국 지명을 제대로 발음해내는 것은 사실 영국 사람조차 결코 쉽지 않다.
데번에 위치한 그림처럼 예쁜 타운 'Woolfardisworthy'는 어떻게 발음해야 할까.
또한 햄프셔주의 오랜 역사를 가진 'Beaulieu'는 어떤가.
나 또한 두 지역을 여행해 봤지만 정확히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왜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인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오랜 시간을 지내고 보니,
세종대왕이 소리를 담은 글자 '한글'이라는 귀중한 선물을 주신 것이 대단한 축복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지금부터 천 년 전쯤까지도 영국은 주변의 작은 부족, 제국, 식민지 정복을 꿈꾸는 나라 등 가까운 이웃들에게
돌아가며 점령당했다. 가장 먼저 영국을 침략한 것은 켈트족이었다.
그다음 로마인, 스칸디나비아인, 게르만족이 차례로 침략했다. 바이킹 이후에는 노르만족의 식민지가 되었다.
완전히 다른 언어 그룹에서 파생된 언어를 사용하는 침략자들은 영국 전역의 거리며 빌딩이며 도시 이름을
자기들 원하는 대로 바꿨다. 작은 국토를 가진 영국에는 라틴어, 프랑스어, 웨일스어, 셀틱어, 아일랜드어 등
다양한 언어로 된 지명이 넘쳐나게 되었다. 이런 지명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다시 섞여 뒤죽박죽 짬뽕 상태가 되었고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아쉽게도 없었다.
/일러스트=이철원
요크(York)라는 이름은 바이킹어로 마구간이란 뜻을 가진 요비크(Jórvík)라는 이름에서 유래했다.
요크에서 북쪽으로 33㎞쯤 올라가면 프랑스어를 하던 노르만족이 만든 이름인 'Rievaulx'(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또 다른 지명이다)이라는 타운을 만날 수 있다.
여기서 서쪽으로 6㎞ 이동하면 '성벽으로 둘러싸인 요새'라는 라틴어와 '몰트를 재배하는 일가'라는 의미의
고대 노르웨이어와 고대 독일어가 합쳐진 이상한 혼합물 'Acaster Malbis'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영국의 지명을 발음하는 것이 곤혹스럽기는 하지만 과거를 회상하기에는 그만이다.
예를 들면 이 칼럼을 읽는 것만으로도 한때 바이킹들이 요크를 지배했고 로마가 요크 외곽에 성벽을 쌓았으며
후에 이곳에 몰트를 재배하는 농가가 정착했다는 사실, 그리고 노르만족이 북쪽을 점령했다는 역사를
유추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역사책의 첫 장을 넘길 필요도 없이 말이다.
한국의 지명은 세종대왕 덕분에 소리 나는 대로 발음하면 되지만 역시나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아마도 나의 한문 지식이 한국인 대부분에 비해 부족해서겠지만 나를 포함한 한국에 거주하는 이방인들은
한국 지명의 유래에 대해 무척이나 궁금해한다.
대구(大邱)는 생선 대구에서 비롯되었을까. 생각해보면 대구는 바다와는 떨어져 있다.
아니면 커다란 구(區)라는 뜻인가. 혼자 머릿속으로 고민해본다.
한국 지명의 유래를 알아가는 것 또한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상상하는 것만큼이나 흥미롭다.
부산(釜山)의 산은 산(山)에서 유래했을 것이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었지만, 부(釜)자가 솥단지를 의미한다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웠다. 부산에 갈 때마다 창 밖을 기웃대며 어떤 산이 가마솥 뚜껑을 닮은 유명한 산인지 살피곤 한다.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지역이 형성된 후 이름이 거의 바뀌지 않은 영국과는 달리 한국의 지명은 매우 유동적으로
바뀌어 왔다는 것이다. 왜 미추홀이라는 이름을 인천이라고 바꾸게 되었을까.
고대의 신화, 지리 또는 풍습 그 어떤 흥미로운 요소가 미추홀이라는 이름에 영감을 주었을까.
질문에 해답은 있다. 어떤 질문에는 다수의 답이 있기도 하다.
전부가 모순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것은 한자를 해석하는 다양한 방법과 관련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 길이 없다. 혼란스럽지만 흥미로운 퍼즐과도 같은
영국 지명들만큼이나 한국 지명들 또한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을 가져다주는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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