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유석재의 돌발史전] 홍범도의 고백 “1922년 레닌 만난 건 自由市 참변 보고 위해서였다”

바람아님 2023. 9. 15. 01:08

조선일보 2023. 9. 15. 00:02

홍범도에 대한 추가 팩트 세 가지

독립운동가 홍범도(1868~1943) 장군의 흉상을 육군사관학교에서 옮기는 문제로 논란이 일었습니다. ‘도대체 왜 그런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변조차 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국방부 대변인의 모습이 몹시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지난 8월 31일자 조선일보 A5면 기사에서 이 문제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자유시 참변때 가해자 볼셰비키 편에 서… 홍범도, 육사 롤모델 될 수 있나 자유시 참변때 가해자 볼셰비키 편에 서… 홍범도, 육사 롤모델 될 수 있나 (chosun.com)

그런데 홍범도에 대해 추가로 언급해야 할 몇 가지 팩트가 있습니다. 이번 기사는 그것을 밝히기 위한 것입니다.

①1922년 모스크바에서 왜 레닌을 만났는가?
1922년 1월, 홍범도는 매우 먼 여행을 떠납니다.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민족혁명단체회의의 개막식에 참석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그는 소련의 국가원수인 인민위원평의회 의장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을 만납니다......홍범도가 1938년 무렵 직접 쓴 1차 사료가 있습니다.....“1921년 동지달에 모쓰크와로 레닌동무게로 1921년 자유시에서 조선빨찌산을 어간에 뉴혈적 사변이 난데 대한 보고을 하려고 조선빨찌산대표로 갇다.”.....레닌을 만난 이유가 ‘자유시 참변 보고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습니다.

②독립운동 동지 이범석의 회고 “홍범도는 죽었다”
1920년 청산리 전투 당시 홍범도와 같이 싸운 인물이 철기 이범석(1900~1972)입니다. 훗날 대한민국 초대 국무총리와 국방부 장관을 지낸 인물이죠. 그의 자서전이 1971년에 출간된 ‘우둥불’입니다
“후일 홍범도씨는 러시아 이만(伊滿)시로 군대가 넘어가자, 러시아에서 일크스크파의 공산당원이 된 사람들의 권유를 들어, 공산당원이 되었다. 허나 그는, 그 속에서 할 일도 없었고 이름만 빌려 준셈이 되었다. 그후 그는 自由市 부근에서 방황하다가, 병 들어, 불쌍하게 사망하고 말았다.”

③1940년대, 홍범도의 ‘조국’은 어디였을까
독·소 개전 직후 그는 ‘침략군으로부터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전선으로 나서고자 했던 것입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페이스북에서 ‘그 시기 불가피했던 소련과의 협력을 이유로 독립전쟁의 위업을 폄훼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남루하고 편협한 나라로 떨어지는 일’이라 했지만, 홍범도는 처음엔 불가피하게 소련에 협력했을지 몰라도 이후 20여 년을 충직한 소련의 인민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적하는 일이 ‘독립전쟁의 위업’을 폄훼하는 것이 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해석의 영역이 아니라 팩트의 영역입니다.


https://v.daum.net/v/20230915000226035
[유석재의 돌발史전] 홍범도의 고백 “1922년 레닌 만난 건 自由市 참변 보고 위해서였다”

 

홍범도의 고백 “1922년 레닌 만난 건 自由市 참변 보고 위해서였다” [유석재의 돌발史전]

유석재의 돌발史전 뉴스레터 구독하기 ☞ 독립운동가 홍범도(1868~1943) 장군의 흉상을 육군사관학교에서 옮기는 문제로 논란이 일었습니다. ‘도대체 왜 그런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제대로

v.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