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4. 11. 6. 00:49
높은 촛대, 노란 장미, 반짝이는 은식기들, 한 사람 앞에 세 개씩 놓인 포도주잔. 특히 나의 구미를 당기는 건 주방에서 희미하게 풍겨 나오는 고기 굽는 냄새였다. 식사는 버터로 바삭바삭하게 구운 뱅어 요리에 모젤 백포도주를 곁들여 시작됐다. 생선 요리를 다 먹자, 곧 두 번째 요리가 나왔다. 이번에는 큼지막한 로스트비프였다. 그녀가 고기를 마이크 앞에 놓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칼로 얇게 잘라 하녀가 모두에게 돌릴 수 있도록 접시 위에 담았다. - 로알드 달 ‘맛’ 중에서 |
주식중개인 마이크가 만찬을 열었다. 그는 자신이 돈만 좇는 사람이 아니라 예술과 문화에도 조예가 깊은 교양인임을 알리고 싶었다. 화려한 식탁을 자랑하며 포도주에 대한 지식도 늘어놓았다. 특별한 와인을 선보이며 손님들이 그 가치를 알아주길 기대했다.
리처드는 포도주의 생산 연도와 재배지를 알아내는 데 일가견이 있는 미식가다. 쉰 살쯤 된 그는 사실 마이크의 18세 딸 로즈에게 빠져있다. 그는 집 두 채를 걸 테니 어떤 포도주인지를 알아맞히면 로즈와 결혼하게 해달라며 내기를 제안한다. 그를 싫어하는 딸은 기겁하지만 절대 맞히지 못할 거라 자만한 마이크는 내기에 응한다.
“아주 상냥한 와인이군. 첫맛은 새침하게 수줍어하지만, 두 번째 맛은 아주 우아해.” 현란한 수사를 늘어놓으며 포도주를 평한 리처드는 아주 쉽게 원산지와 재배 연도를 알아맞힌다. 마이크와 로즈는 절망에 빠지고 리처드는 의기양양 승리의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반전의 대가인 로알드 달이 이야기를 이렇게 끝낼 리 없다. 이 소설의 결말은 어떻게 뒤집힐까?
눈으로 먹고 귀로 맛을 보는 요리 프로그램이 화제다.....요리는 생존 수단을 넘어 우리의 삶과 가치관을 담아낸다. 아름답게 장식된 음식을 소셜 미디어에 자랑하는 것이 대세라 해도, 더 많은 사람들은 오늘도 소박한 밥상 앞에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수저를 든다.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https://v.daum.net/v/20241106004936008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69] 음식, 생존을 넘어 맛과 멋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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