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정민의 세설신어 [119] 지칭삼한(只稱三閒)

바람아님 2014. 7. 29. 09:42

(출처-조선일보 2011.08.18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최규서(崔奎瑞)가 전라감사로 있을 때 일이다. 호남에서 막 올라온 사람이 있었다. 
영의정 최석정(崔錫鼎)이 그를 불러 물었다. "그래 전라감사가 백성을 어찌 다스리던가?" 
그 사람이 대답했다. "별일이 없던 걸요. 하지만 남쪽 백성들이 다만 세 가지가 한가로워졌다고들 합니다(只稱曰三閒)." 
"그게 뭔가?"   "고소장 쓰는 일이 한가롭고, 공방(工房)이 한가롭고, 기악(妓樂)이 한가롭다고요."

최규서가 이 말을 전해듣고 머쓱했다. "저를 지나치게 칭찬한 말이로군요. 호남은 소송문서 작성하는 일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고소장이 오면 오는 대로 즉시 제출하게 해서 바로바로 처리했지요. 덕분에 제가 책을 좀 읽을 여유가 생겼습니다. 
혹 가까운 벗이 이곳에서 나는 물건을 청해도 일절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한번 들어주기 시작하면 뒷감당이 안 되니까요. 
음악을 즐기는 것이야 나쁠 게 없으나, 삼가지 않으면 유탕(遊蕩)에 흐르고 맙니다. 그래서 정도를 넘지 못하게 했을 뿐입니다." 최규서가 쓴 "병후잡록(病後雜錄)"에 나온다.

신광한(申光漢)이 문장은 뛰어났으나 실무에는 어두웠다. 형조판서가 되었을 때 사건 판결을 제때 처리하지 못해 구류되어 
갇힌 사람으로 옥이 넘쳐났다. 
옥사를 증축하기를 청하니 중종이 말했다. 
"옥사를 증축하느니 판서를 바꾸는 게 낫겠네." 허자(許磁)를 대신 임명하자 금세 옥이 텅 비어 버렸다.

중종 때 정붕(鄭鵬)이 청송부사가 되었다. 
영의정 성희안(成希顔)은 그와 가까운 사이였다. 편지를 보내 축하한 후, 잣과 벌꿀을 보내줄 것을 청했다. 
얼마 후 답장이 도착했다. 
"잣나무는 높은 산꼭대기에 있고, 꿀은 민가의 벌통 속에 있습니다. 태수 된 자가 어찌 이를 얻겠는지요." 
성희안이 부끄러워하며 사과했다.

급히 해야 할 일은 밀쳐두고 공연한 일이나 만들고, 윗사람에게 잘 보이려 뇌물이나 보내며, 
매일 기생들 불러다 풍악이나 잡히면 정치는 그만 망조가 든다. 
일 만들지 않는 것이 바른 정치다. 백성들 한가롭게 하는 것이 바른 정사다. 
너무 한가로웠던 구청장은 도박하다가 현장에서 입건되고, 가뜩이나 바쁜 서울 사람들은 도처에 붙은 투표를 하네 마네 하는 
현수막 잔치에 짜증이 난다.



불로그내 "청송부사 정붕(鄭鵬)과 영의정 성희안(成希顔)의 일화" 

또 다른 이야기 백재고잠 (栢在高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