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國際·東北亞

"'소녀상'은 20년 진실 외쳐온 할머니들의 아픔"

바람아님 2014. 9. 24. 11:34
'평화의 소녀상' 조각한 김운성·김서경 부부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맞은편 인도에 2011년 12월 14일 처음 세워졌다. 그 후 2년 9개월 만에 국내외 10곳에서, 어리지만 당차고 위엄 있는 모습으로 세인과 소통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에 끌려갔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평화의 소녀상' 이야기다. 의자에 앉아 있는 한복차림 소녀 조각은 불끈 쥔 두 주먹을 무릎에 올려놓고 길 건너 일본대사관 건물을 응시하고 있다.

↑ 아라아트센터 전시장에서 채색한 ‘평화의 소녀상’의 원형을 바라보는 김운성(오른쪽)-김서경 부부. 김동훈 기자 dhk@munhwa.com

↑ 서울역사박물관 앞에 설치된 부부 조각가의 2010년 작 ‘전차와 지각생’.

 

"할머니의 소녀 시절을 담아낸 브론즈상을 통해 역사를 제대로 알리며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공감하기를 바랍니다. 소녀상과 더불어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권이 회복되기를 기대합니다."


'평화의 소녀상'을 만든 조각가 김운성(50)-김서경(49) 부부는 "앞으로 전 세계 일본대사관 앞에 소녀상을 세우는 게 꿈"이라며 "소녀상이 일본의 반성을 촉구하는 데 일조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소녀상은 2011년 연말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수요집회 1000회 때 일본대사관 앞에서 처음 공개됐다. 현재 서울 마포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비롯해 경기 고양시 호수공원·성남시청 광장·수원시청 앞 올림픽공원·화성시 동탄 센트럴파크·고양 국립여성사전시관과 경남 거제시 거제문화예술회관 소공원 및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시립공원과 미시간주 사우스필드 미시간한인문화회관 앞 등지에 총 10개가 건립됐다.

부부는 "소녀상은 형태가 3가지"라며 "브론즈 조각과 별도로 FRP 소재인 좌상 원형틀은 교육교재로 각종 행사에서 전시 중"이라고 말했다. 흰 저고리·검정 치마에 머리를 검게 채색한 좌상 원형은 종로구 인사동길 아라아트센터에서 23일까지 열리는 '평화·상생·공존'전에서 전시 중이다.

"소녀상도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1호는 높이 130㎝의 좌상이지만 거제의 조각은 키 160㎝의 서 있는 소녀상입니다. 지난 1일 개관한 고양 국립여성사전시관의 조각은 1991년 자신이 위안부라는 사실을 최초로 증언한 김학순(1924∼1997) 할머니의 모습입니다."

두 사람은 1984년 중앙대 예술대에 입학한 대학 동기 커플. 1989년 결혼해 올해로 결혼 25주년을 맞는 전업작가 부부다. 결혼 후 서울 서오릉 시절을 거쳐 현재 경기 일산에서 함께 작업하는 부부는 "소녀상과의 만남은 우연이지만 미술작가로서 소녀상 작업은 사명이자 큰 축복"이라고 말했다.

1991년 이후 위안부 할머니의 수요 집회가 20여 년 이어지면서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미술작가로서 뭔가 보탬이 되고 싶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를 찾은 것이 2011년 봄. 마침 수요집회 1000회 기념사업을 구상 중이던 정대협과 뜻을 모아 소녀상이 탄생했다.

제작과정에서 부부 조각가는 효율적 분업을 통해 이미지도 업그레이드했다. 얼굴 표정 같은 디테일한 표현은 평소 여성 어린이 등 사람이미지를 즐겨 다뤄온 아내가, 또 손 발 표현이며 '힘쓰는 일'은 무대미술 퍼포먼스까지 다양한 장르를 추구해온 남편이 맡았다.

소녀상은 초기 기획단계에선 다소곳하던 두 손이 주먹 쥔 형태로, 또 댕기 머리는 거친 단발머리로 바뀌었다. 소녀의 험난한 고행을 상징하듯 맨발이다. 사과나 반성은커녕 날로 극우화하는 일본의 태도에 맞서는 강한 의지의 표출로 지난 1월 거제에 설치된 소녀상은 서 있는 자세에 새를 두 손에 들고있는 모습으로 바꾸었다.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을 볼 때 옆의 빈 의자에 앉아 보세요. 연약하지만 위엄을 갖추고 일본을 꾸짖는 듯한 표정의 소녀상을 쓰다듬어 보고 또 일본대사관을 바라보세요. 그 자리에서 20여 년 꾸준히 싸워온 할머니들의 아픔이 전해지면서 위안부 문제 해결이라는 우리의 과제를 느끼게 될 겁니다."

아내 김서경 씨는 "분노 슬픔 희망의 감정이 복합적인 소녀상은 비 오는 날이면 눈물을 흘리는 듯, 날씨와 상황에 따라 그 이미지가 달라지는 것 같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소녀 어깨 위의 새는 작고한 위안부 할머니와 오늘의 우리를 연결해주는 영매이고 소녀상 뒤에 드리운 그림자는 어깨 구부정한 할머니의 상징"이라고 설명했다. 그림자 속 나비는 과거의 위안부 문제가 현재를 넘어 미래로 이어진다는 의미다.

남편 김운성 씨는 "할머니들이 예쁘게 만들어줘서 고맙다며 소녀상을 쓰다듬으며 우시는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며 "현재 새로운 형태의 소녀상 4호를 구상 중"이라며 밝혔다.

소녀상으로 대중들에게 각인된 부부는 친근한 일상의 이미지를 담은 조각 및 진중한 리얼리즘 계열의 작업을 병행해 왔다. 2007년 돼지해의 2007마리 돼지전을 비롯해 1993년 이후 부부조각전을 펼쳐왔다.

서울역사박물관 앞에 놓인 전차 안팎에 인물 5명이 등장하는 '전차와 지각생'(2010년 작), 상계동 노원문고 앞 '3학년 5반'(1998년 작)도 추억과 향수를 자극하는 이 부부의 작품이다. 부부는 이 밖에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 있는 인혁당 사형수상, 동학 100주년 무명용사탑, 효순 미선 추모상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