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부터 '시애라(詩愛羅)'라는 등산 모임을 하고 있다.
시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모임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등산만 하는 게 아니라 시를 통해
삶을 반추한다는 소박한 목적을 갖고 있다. 산과 강을 찾을 때 늘 시 한 수, 문장 한 줄이라도
곁들였던 조상의 문화 사랑 전통을 잇자는 당찬 포부도 있었다.
우리는 매번 산을 힘겹게 오르고 숨 막히는 경치에 환호성을 지른다.
그런데 늘 산행 때면 온갖 야생화 사진을 유난히 정성스럽게 찍고 다니는 분이 있다.
꽃에 대한 조예도 남달라서 달개비·벌개미취·애기똥풀·금강초롱·동자꽃 등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름과
꽃말까지 자세히 알려주곤 한다.
풍성한 수풀 속에 보일 듯 말 듯 피어난 작은 꽃들조차 모두 자기 이름이 있다.
모두 고유의 이름을 가진 채 기꺼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게 반가웠다.
산에 가는 의미도 장엄한 풍경만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산길 옆에 곱게 피어난 야생화의 노력에 눈길을 주기 위해서라는
사실도 새삼 깨닫는다.
지금까지 116번째 산행을 끝마쳤다.
하는 일과 연령대도 각양각색인 40여명이 큰 사고 없이 등반 일정을 소화하기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각자의 몫을 충분히 하지 않는다면 결국 누군가는 더 많은 짐을 짊어져야만 한다.
앞장서지 않더라도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발걸음을 내딛는 이들 덕에 언제나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세상이 주목하지 않아도 제자리에서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있기에 내가 서 있는 자리도 조금이나마 빛이 날 수 있다. 어디 사람뿐이겠는가.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도 그들의 이름을 불러야만 할 것이다.
모든 야생화의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가 불러주는 그분처럼 나도 작은 것들을 잊지 말자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