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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프랑스 경제학자

바람아님 2014. 10. 15. 10:41

(출처-조선일보 2014.10.15 방현철 논설위원실)


'레세 페르(laissez-faire)'. '그냥 내버려두라'는 프랑스어다. 
정부가 시장에 간섭하지 않으면 경제가 스스로 잘 굴러간다는 자유방임주의 경제학의 상징 구호다. 
이 말을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가 써서 자신의 이론을 설명했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경제가 움직인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생전에 한 번도 '레세 페르'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레세 페르' 개념은 애덤 스미스가 태어나기 전인 17세기 말 프랑스에서 생겼다. 
루이 14세의 재무장관 콜베르가 상인들을 만나 "국가가 상공업을 진흥시키려면 뭘 해야 하나"라고 물었다. 
그러자 상인들이 "그냥 내버려두면 된다"고 했다는 게 유래다. 
이 개념은 관세로 상공업을 보호하자는 콜베르식 중상(重商)주의에 대항해 세금을 낮추고 농산물 자유무역으로 경제를 
키우자는 중농(重農)주의로 발전했다.

[만물상] 프랑스 경제학자
▶기업가를 뜻하는 '앙트르프르뇌르(entrepreneur)'라는 단어도 19세기 초 프랑스 경제학자 장 바티스트 세가 만들었다. 
그러나 프랑스에선 혁명과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사회주의 영향이 커졌다. 
규제를 만들고 노동자 보호를 우선하자는 주장이 박수를 더 받았다. 
그래서 '기업가라는 단어가 탄생한 프랑스엔 정작 기업가가 없다'는 비아냥도 듣고 있다. 
올 초 뉴스위크는 '프랑스의 몰락'이란 칼럼에서 프랑스 경제가 기업가 정신의 부재, 높은 세율, 과도한 복지 등으로 
무너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대기업 독과점에 대한 규제를 연구한 프랑스 툴루즈대 장 티롤 교수가 선정됐다. 
그간 노벨 경제학상은 주류 경제학 발상지 영국과 그 바통을 이어받은 미국이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역대 수상자 75명 중 미국인이 53명으로 가장 많고 영국인이 7명으로 그다음이다. 
프랑스는 티롤 교수까지 합쳐 3명으로 노르웨이와 공동 3위다. 
서양인이 아닌 학자는 인도의 아마르티아 센밖에 없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미리 위기를 예견 못 한 주류 경제학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다 보니 비록 프랑스 경제학자들이 '프랑스병(病)'에 대한 해법을 못 냈어도 영·미와 다른 시각이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 듯하다. 올해 '21세기 자본'이라는 베스트셀러를 내 스타 경제학자가 된 프랑스 출신 토마 피케티는 
주요국 빈부 격차를 20년간 연구하기도 했다. 
경제학도 모방이 아닌 혁신 전략을 펴야 눈길을 끈다. 
한국 학자들은 언제까지 영·미 경제학 베껴 쓰기를 할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