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3.10.30 찬킹청, 홍콩 신보 총편집인)
보시라이 주장에 중국 인민들 동조자 많아
중국 권부가 깨끗하지 못하다는 증거, '중국의 꿈'은 갈 길 멀어
첸시통-천량위 보다 보시라이 사건이 더 커
보시라이(薄熙來) 사건의 재판은 전세계적인 뉴스가 됐다.
보시라이(薄熙來) 사건의 재판은 전세계적인 뉴스가 됐다.
장쩌민(江澤民) 이후 중국 공산당은 새로운 핵심지도자들이 취임할 때마다 큰 사건을 처리했다.
사건 관련자들은 모두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급이었다.
장쩌민 취임 이후 오래지 않아 첸시통(陳希同) 사건이 있었고, 후진타오(胡錦濤)가 장쩌민의 후계를 이어받은 뒤에는
첸량위(陳良宇) 사건이 있었다.
지금은 시진핑(習近平)이 권력을 장악하자 보시라이 사건이 터졌다.
- 지난 9월 1심 재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보시라이 전 서기의 모습 /조선일보DB
이 세가지 사건을 비교해 보면 보시라이 사건이 훨씬 떠들썩한 사건이다.
보시라이 사건이 터지기 전에 보시라이의 부하였던 왕리쥔(王立軍) 충칭시 공안국장이 청두의 미국 영사관으로 도주해
보시라이 가문의 스캔들을 잇따라 폭로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보시라이의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는 영국인 비즈니스맨
헤이우드의 살해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 영국인 사업가가 중국 공산당 고위간부의 아내 손에 사망했다는 점에 서방 언론들은
큰 관심을 가졌고 보시라인 사건의 ‘국제화’ 정도는 이전의 첸시통과 첸량위 사건을 훨씬 넘어섰다.
이러한 민감성 때문에 조사 및 증거수집, 법정 신문에 이르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실 보시라이가 권좌에서 물러난 것이 형사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믿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사실 보시라이가 권좌에서 물러난 것이 형사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믿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중국 공산당 고위 간부의 뇌물수수와 횡령, 직권남용 사실을 찾아내는 것은 정말 말처럼 그리 쉽지 않다. 보시라이의 권력이
전성기였던 시절, 홍콩에서 기자로 활동한 장웨이핑(姜維平)은 줄곧 보시라이가 다롄에서 권력을 남용하고 법을 어긴 행동들을
폭로했다. 그러나 공안당국이 어찌 보시라이의 털끝 하나 건들겠는가.
보시라이 건은 형사 사건이라기 보다는 정치적 사건
중국 공산당의 권력투쟁 과정에서 정치적 죄명, 예를 들면 자본주의 추종세력, 반(反)공산당 반(反)사회주의 세력 같은 죄명은
보시라이 건은 형사 사건이라기 보다는 정치적 사건
중국 공산당의 권력투쟁 과정에서 정치적 죄명, 예를 들면 자본주의 추종세력, 반(反)공산당 반(反)사회주의 세력 같은 죄명은
형사범죄의 죄명으로 바뀐다. 이러한 변화 자체가 일종의 진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정치적 죄명은 법률과 증거 조차 필요
하지 않는 인치(人治)요 폭력이기 때문이다. 반면 형사 사건이 될 경우 고위관리를 끌어 내리려면 몇 년이 걸리더라도 여러
개의 죄명을 갖추어야 하고 법률적 근거와 물질적 증거도 갖추어야 한다. 당 고위 지도자의 말 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과거 중국공산당 고위관리 숙청사건은 법원의 심리 개시전에 거의 모든 부분에 걸쳐 예심이 끝났다.
과거 중국공산당 고위관리 숙청사건은 법원의 심리 개시전에 거의 모든 부분에 걸쳐 예심이 끝났다.
대체로 피고인은 법정에 서서 죄를 인정하고 참회할 뿐이었다. 검사와 변호사가 법정 공방을 벌이는 일은 극히 적었다.
뿐만 아니라 피고인은 감형과 가벼운 처벌을 받기 위해 일반적으로 법정에서 범죄사실을 인정하고 머리를 떨군다.
그러나 보시라이는 지난 8월 22일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하고 검찰의 공소사실을 부정했다. 또 자신이 뇌물수수죄를 인정한
그러나 보시라이는 지난 8월 22일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하고 검찰의 공소사실을 부정했다. 또 자신이 뇌물수수죄를 인정한
것은 사건을 처리하는 사람이 그렇게 하라고 지시를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보시라이는 “나는 당시 기회주의자였으며, 연약했다”고 말했다. 이 말은 그가 관대한 처분을 바라고 죄를 인정하는
잘못을 저지르긴 했으나, 검찰의 증거는 사실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는 법정에서 증인과 대질신문을 갖고 책임을 전적으로 증인에게 떠넘겨 버렸다.
법정신문이 시작된 뒤 파격적으로 진술 번복
보시라이는 법정신문이 시작된 뒤에야 비로소 진술을 번복했다. 그게 이렇게 늦게까지 기다린 목적은 두가지이다.
법정신문이 시작된 뒤 파격적으로 진술 번복
보시라이는 법정신문이 시작된 뒤에야 비로소 진술을 번복했다. 그게 이렇게 늦게까지 기다린 목적은 두가지이다.
첫째, 보시라이는 죄를 인정하든 안하든 결국 유죄판결을 받을 것이라는 점을 잘 안다. 그래서 혐의를 부인하면서 자신이
결백하다는 입장을 표시하고, 검찰의 기소는 죄를 뒤집어 씌우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둘째, 정치국 위원급 인물의 형사 소추에서 죄명은 단지 명목에 불과할 뿐 진짜 목적은 집권파의 정치적 반대파를 제거하는
둘째, 정치국 위원급 인물의 형사 소추에서 죄명은 단지 명목에 불과할 뿐 진짜 목적은 집권파의 정치적 반대파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국내외 사람들이 생각하는 심리를 활용한 것이다. 보시라이가 정치를 시작한 이후 보여온 정치계책에 비추어 볼 때
그가 이러한 ‘군중심리’를 몰랐을 리 없다.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사건 속에 또다른 사건이 있으며,
‘속사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고 믿게 하는 전략이다. 설령 보시라이가 결국 불가피하게 유죄판결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정치투쟁의 희생자로 행세하게 된다. 뇌물을 받아먹고 법을 어긴 탐관이 결코 아닌 것이다.
보시라이의 정치적 죄명에 대해 말해보자. 그가 충칭시 당서기 시절에 내건 ‘공산당 기치를 드높이고 범죄조직을 척결한다’
(唱紅打黑)는 구호는 베이징의 집권파에 도전하는 정치강령, 마오쩌뚱 시대의 의식형태를 기초로 한 공평사회에 호소해
군중의 지지를 끌어들이는 정치 강령으로 풀이된다. 보시라이 사건의 심리가 시작된 뒤 보시라이의 지지 민중들은
“정의와 공평을 지지한다. 정의를 잃으면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고 크게 외쳤다. 보시라이 지지자들은 보시라이에게 이미
정치적 역전의 기회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공개적으로 보를 지지하고 있는 것은 마오쩌둥 식의
‘공평주의’ 이념이 대륙에서 팔리고 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공평주의 주장에 지지자 몰려
인터넷 바이두에서 ‘창홍타흑(唱紅打黑)’을 검색해 보면 이렇게 풀이가 되어 있다.
공평주의 주장에 지지자 몰려
인터넷 바이두에서 ‘창홍타흑(唱紅打黑)’을 검색해 보면 이렇게 풀이가 되어 있다.
“개혁개방 수십년 동안 중국의 경제사회는 크게 변했고, 일부 사람들의 사욕(私欲) 팽창과 공권력 남용, 뇌물 수수 및 사익
추구가 범죄조직의 보호막이 됐다. 원래 권력은 인민이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민은 공권력 남용의 피해자가 된다.
이 때문에 보시라이가 충칭 당서기 시절에 범죄조직을 타파하고 악을 제거하는 것을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은 그들이 사회의
공평정의를 외치고 있다는 의미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보시라이가 ‘창홍타흑’ 이념을 빌려 정치세력을 확대하고 권력야심을 키우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을 알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보시라이가 ‘창홍타흑’ 이념을 빌려 정치세력을 확대하고 권력야심을 키우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각종 불공평 현상이 인민들의 분노를 불러 일으키고 인민들은 공평과 정의를 갈구하기 때문에 많은
충칭 시민들이 ‘창홍타흑’ 이념을 받아들였다. 중국 내륙 지방에서 최근 수년간 부활한 마오쩌둥 숭배 현상은 공평사회
동경에서 비롯된 일종의 역류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2010년 12월 충칭에 도착해 조사연구를 한 적이 있다. 당시 그는 현지에서 전개되던
‘창홍타흑’ 이념의 충칭식 모델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표시했다. 시진핑의 이러한 입장은 그가 이전 수개월 동안 공개적으로
표명해 온 마오숭배 사상과 일맥상통한다.
공산당 주도의 자체 개혁은 쉽지 않아
개혁개방 30년이 지난 지금 중국이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요즘도 여전히 마오사상이 출몰하고 있는
공산당 주도의 자체 개혁은 쉽지 않아
개혁개방 30년이 지난 지금 중국이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요즘도 여전히 마오사상이 출몰하고 있는
상황을 지금의 중국 지도자들의 좌향좌해서 극좌 노선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간단히 말할 수는 없다.
현재 중국이 안고 있는 빈부격차, 사회적 불공평, 관료사회의 탐욕과 부패 등 각종 폐단을 처리할 때 중국 공산당은 체제혁신을
통해 돌파하거나 제도적으로 공평정의를 확립할 방법이 없다. 단지 정신적으로만 마오쩌둥의 ‘인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순박한 혁명정신에 따라 도덕에 호소할 따름이다. 반면 중국에서 물욕이 횡행하고 부패가 각계각층에 파고 들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마오쩌둥 식 구호를 외치는 것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사람들도 하여금 쓸데 없는
정치적 연상을 하게 만들 뿐이다.
-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꿈꾸는 시진핑 중국 국가수석/블룸버그
2013년 3월 17일 제 12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당선 연설을 통해 9차례나 ‘중국의 꿈’(中國夢)에 대해
언급했다. 도대체 무엇이 ‘중국의 꿈’인가. 시진핑은 작년 11월 29일 국가박물관을 참관했을 때 ‘중국의 꿈’에 대해 해석을 한
적이 있다.
당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것은 중화민족의 근대화 이래 가장 위대한 꿈이다.
중국 공산당 성립 100주년 때(2021년)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한 소강(小康)사회를 전면적으로 실행하고 신중국 성립
100주년(2049년) 때에는 부국강병과 민주문명을 갖춘 조화로운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를 건설하겠다.
중화민족 위대한 부흥의 꿈은 반드시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꿈’ 성공하려면 제도 정비해야
중국은 현재 이미 굴기해 세계 2대 경제대국이 됐다. 국가는 부유해지기 시작했지만 부의 분배는 매우 불공평하다.
‘중국의 꿈’ 성공하려면 제도 정비해야
중국은 현재 이미 굴기해 세계 2대 경제대국이 됐다. 국가는 부유해지기 시작했지만 부의 분배는 매우 불공평하다.
정부는 많은 자원을 장악하고 정책을 통해 시장과 기업의 경영을 좌지우지 하면서 정경유착, 관상(官商)유착의 현상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중국 인민들은 사회 곳곳에 불공평이 만연해 있으며 부는 모두 특권층 및 그 수행원의 수중에 집중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꿈’ 속에 공평과 정의, 부의 평등한 분배가 포함되지 않는다면 ‘중국의 꿈’은 단지 지도자 개인의
꿈에 불과하며 결코 노동서민들의 꿈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시진핑 주석은 서방의 민주주의나 삼권분립 제도를 결코 모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시진핑 주석은 서방의 민주주의나 삼권분립 제도를 결코 모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여러차례 표시했다. 그러나 현행 중국식 사회주의는 1976년 이전의 문화대혁명과 같은 극좌 운동이 재발할 가능성을 저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개혁개방 이후 요구되는 민주주의를 보장하고 인권을 보호하며 헌법의 존업성을 보위할 수도 없다.
중국식 사회주의 기반 위에서 공평정의를 추구하는 것은 헛된 말일 뿐이다.
‘중국의 꿈’을 실현하려면 제도를 완전히 정비해야 한다.
지도자의 사상에 의존해서는 안된다.
제도 개혁이 뒷받침 되지 않는 개혁은 문화대혁명 당시의 ‘홍가(紅歌) 부르기’ 처럼 빈궁한 공평, 꽉막힌 우민(愚民)식 정의를
제도 개혁이 뒷받침 되지 않는 개혁은 문화대혁명 당시의 ‘홍가(紅歌) 부르기’ 처럼 빈궁한 공평, 꽉막힌 우민(愚民)식 정의를
떠받드는 일로 그치게 된다. 이것이 중국의 현대화로 가는 길은 아니지 않은가. 보시라이는 비록 정치적으로는 끝이 났지만
그가 ‘홍가 부르기’로 많은 민중들의 지지를 쟁취해 낸 현상은 중국 지도자가 깊이 생각할 가치가 있지 않을까.
<찬킹청(陳景祥)은 누구?> 언론계 활동 이외에도 적극적으로 언론교육에 나서 중문대학 언론미디어대학원 석사과정에서 강의를 했다. 2006년 1월에는 홍콩 행정장관의 위임으로 공공라디오 검토위원회 위원을 맡아 검토 보고서를 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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