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가슴으로 읽는 한시] 절필

바람아님 2014. 10. 20. 11:25

(출처-조선일보 2014.10.20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절필


풍진 세상 잘못 나와
잘 풀린 일 하나 없고
험한 파도에 휩쓸릴까
돛단배처럼 겁을 냈네.


신통한 단약 만들었어도
시험해 볼 길은 없었고
청평검*(靑萍劍)을 얻었어도
끝내 숨겨 두었다네.


동해 바다 삼신산에서
벗이 오기를 기다리니
이제 나는 인간 세상을
구우일모(九牛一毛)로 하직하네.


표연히 여기를 떠나
하늘로 올라간 뒤엔
은대궐에 뜬구름은
만 길 높이 솟아있으리.

絶筆


誤出風塵百不遭(오출풍진백부조)


孤檣常怕惡波濤(고장상파악파도)



鍊成丹鼎何曾試(연성단정하증시)


斲掘靑萍竟自韜(착굴청평경자도)



海上應須三島侶(해상응수삼도려)


人間今落九牛毛(인간금락구우모)



飄然此去空明界(표연차거공명계)


銀闕浮雲萬丈高(은궐부운만장고)


만물상 일러스트조선 후기 문신 최성대(崔成大·1691 ~1762)의 
절필시이다. 
한 시대의 빼어난 시인답게 좌절과 불운의 한평생을 
한 편의 시로 표현하고 떠났다. 
이 세상에 온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고, 
돛단배로 큰 바다 풍랑을 헤쳐가듯이 
늘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정성껏 빚어놓은 능력을 써볼 데도 없이 
사장시킨 인생이었다.
내 고향은 선계(仙界)로, 
선인(仙人)들이 왜 그렇게 사느냐며 어서 오라 손짓한다. 
이제 떠나고 나면 세상과는 영영 인연을 잇고 싶지 않다. 
누군들 되돌아보면 회한이 남지 않는 인생이겠는가마는 
그래도 너무 처연하다.

*청평검: 명검의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