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가슴으로 읽는 한시] 단풍

바람아님 2014. 10. 13. 09:22

(출처-조선일보 2014.10.13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단풍


가을은 노을을 잘라내어
옅은 색 짙은 색 붉은 천을 만들고
서슬 퍼런 서리는 웬 정이 많은지
끝도 없이 솜씨를 보인다.

저무는 낙조 아래로 점점이 불에 타오르고
이 산 저 산 속에 층층이 화폭이 펼쳐진다.

몇 줄의 사연은 심사를 구슬프게 만들며
이런저런 시름 끌고 저녁 바람에 떨어진다.

깊어가는 가을 향해 조락을 원망하지 말자.
봄바람은 또 시든 풀숲에서 풀을 엮고 있을 게다.


紅葉

秋霞翦作淺深紅(추하전작천심홍)

靑女多情巧不窮(청녀다정교불궁)


點點欲燒殘照外(점점욕소잔조외)

層層如畵亂山中(층층여화난산중)

數行書字悲心事(수항서자비심사)

幾 牽愁落晩風(기개견수낙만풍)

莫向秋深怨零落(막향추심원영락)

東君應又綴殘叢(동군응우철잔총)


[가슴으로 읽는 한시] 단풍
김시습(金時習·1435~1493)은 청산을 떠도는 비애를 즐겨 읊었다. 
단풍을 보면 늘 마음이 설렌다. 
형언할 수 없는 단풍의 아름다움은 가을 하늘을 수놓은 노을의 변신도 같고, 
서리의 짓궂은 장난도 같다. 
시선은 단풍잎 하나하나에 머물다가 어느새 산의 위아래로 옮겨간다. 
낙엽에는 숨겨놓았던 사연이 몇 줄 쓰여 있는 듯 
아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어수선하게 바람에 나부낀다. 
그렇다고 이 가을에 너무 조락만을 말하지 말자! 
죽은 풀숲 곳곳에서 봄바람은 또다시 생명을 키워내고 있을 테니까.

<게시자 추가 이미지>
경주여행 시 기림사에서 본 매월당 김시습의 영당

매월당영당

(영정을 안치안 사당)

영당 담자락의 코스모스

영당 담자락의 코스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