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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납토성, 연인원 138만명 투입한 아파트 5층 높이"

바람아님 2014. 12. 4. 10:16

국립문화재연구소, 동쪽 성벽 발굴성과 공개

한성도읍기(BC 18~AD 475) 백제 왕성임이 확실한 서울 풍납토성은 연인원 138만명 이상을 투입해서 쌓은 아파트 5층 높이 거대 성벽이라는 연구성과가 나왔다.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강순형)는 2011년 시행한 동쪽 성벽 남쪽 구간 발굴조사 성과를 토대로 축조 연대와 건설 공법, 규모, 투입 인력 등을 밝히기 위해 고고학, 영상공학, 지구물리학, 지리학, 측량학, 토목공학, 토양학, 핵물리학 등 각 분야 전문가가 참여한 프로젝트를 수행한 결과 이런 성과를 얻었다고 3일 밝혔다.

그 결과 당시 조사한 동쪽 성벽은 기원후 3세기 중·후반에 착공해 4세기 중반 이전에 처음 완공되고, 이후 4세기 말과 5세기 중반 두 차례에 걸쳐 증축되면서 규모가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성벽 연대를 밝히기 위해 유기물질에 대해 실시한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은 미국과 영국의 전문분석기관에서 수행했으며, 무기결정물에 대한 광자극발광연대는 국내에서 분석했다.

연구소는 20건 이상의 절대연대 측정 결과를 과학적으로 검증함으로써 축조 연대에 대한 국제적인 공신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번에 연구소가 제시한 성벽 축조연대는 2011년 절개조사한 성과에 토대를 둔 것으로, 같은 기관이 1999년 수행한 동쪽 성벽구간 중 중앙 지점에 대해 시행한 절개조사 결과와는 사뭇 다르다. 1999년 발굴성과에 대해 연구소는 중심 성벽의 경우 기원전 1세기까지 올라가는 시기에 축조됐으며, 기원후 2세기 무렵에 증축되어 3세기 중반에는 성벽이 완성된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2011년도 조사구간과 1999년 조사구간은 처음 쌓은 시기, 혹은 후대에 증·개축한 시기가 다를 가능성을 엿보이고 있다.

아울러 성벽 재료로 쓰인 토양의 화학 조성과 유기질 함량이 주변의 자연 퇴적토와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도 확인했다고 연구소는 덧붙였다.

이는 지반 특성과 구조물 하중을 정확히 계산하고, 토양의 다양한 성질을 혼합해 성토(盛土) 재료의 효용성을 극대화할 수 있었던 백제 초기의 뛰어난 과학기술 수준을 보여준다고 연구소는 평가했다.

현재 정비된 성벽은 높이 약 5m 안팎이고 땅속에 3m가량 묻힌 점을 고려하면 남은 성벽 높이가 대략 8m 정도가 될 것으로 추측된다.

연구소가 성벽을 컴퓨터 모형화한 결과 처음 성벽이 건설되었을 때 높이는 10.8m였고, 두 차례 증축을 거치면서 최대 13.3m까지 확대되었음이 밝혀졌다고 밝혔다.

이는 한강변에 아파트 5층 높이까지 흙을 쌓아 총 3.5㎞ 둘레의 거대한 성벽을 완성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연구소는 덧붙였다.

복원한 풍납토성 성벽 규모를 중국 당(唐)나라 때 백과사전 통전(通典)에 기록된 인부 1인당 하루 작업량(19.95尺3=0.51㎥)과 비교할 때 풍납토성 건설에는 연인원 138만 명 이상이 투입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연구소는 "이처럼 풍납토성은 백제 초기의 국가적 역량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며, 이 초대형 국가 프로젝트의 성공은 한반도 중부의 지역 문화가 새로운 국가사회로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