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135] 만들지 않고 '선택'한 뒤샹의 作品

바람아님 2014. 12. 20. 11:55

(출처-조선일보 2014.12.20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마르셀 뒤샹, 샘 작품 사진

마르셀 뒤샹, 샘, 1917년, 앨프리드 스티글리츠의 사진. 작품 소실.


1917년 미술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1887~1968)은 

뉴욕의 한 가게에서 남자용 소변기를 구입했다. 

그는 소변기를 옆으로 세워 눕히고, 하단에 '리처드 머트(R. Mutt)'라는 익명으로 

서명을 한 후, '샘(Fountain, )'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머트'는 아마도 소변기를 제작한 'J. L. 모트사(社)'에서 따왔을 것이다.

뒤샹은 '샘'을 신생 단체인 독립미술가협회의 전시회에 출품했다. 

이 협회는 진보적이고 개방적인 태도를 표방했다. 

기존 미술전에서는 입선과 낙선을 가리는 심사가 당연시됐던 데 반해, 

여기서는 심사 없이 누구나 작품을 출품하고 전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뒤샹은 그들의 개방성을 시험해보고자 했다. 

걸작과 졸작을 나누는 잣대를 없애고 나면 

그다음에는 무엇이 미술이고 미술이 아닌지,

즉 아름다운 미술과 평범한 사물 사이를 가르는 

더 근본적인 가치 판단의 근거가 남기 때문이다.


하지만 협회는 '샘'을 전시해주지 않았다. 미술가가 직접 만든 작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뒤샹은 미술이란 더 이상 작가가 손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응수했다. 

그 이후에도 '샘'은 한 번도 미술관에서 전시된 적이 없지만, 20세기 초 아방가르드의 상징이자 기성품의 미술, 

'레디메이드'의 시작으로 현대미술사의 전설이 되었다.

최근 한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뒤샹의 '샘'을 '쌤'으로 발음하는 걸 들었다. 

언젠가 TV에서도 'Sam'이라는 자막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었다. 

다시 한 번, 뒤샹의 작품은 '쌤(Sam)'이 아니라, '샘(Fountain, 泉=)'이다. 

어쨌든 물이 흘러나오는 물건이니 딱 적당한 제목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