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4.12.20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1917년 미술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1887~1968)은
뉴욕의 한 가게에서 남자용 소변기를 구입했다.
그는 소변기를 옆으로 세워 눕히고, 하단에 '리처드 머트(R. Mutt)'라는 익명으로
서명을 한 후, '샘(Fountain, 泉)'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머트'는 아마도 소변기를 제작한 'J. L. 모트사(社)'에서 따왔을 것이다.
뒤샹은 '샘'을 신생 단체인 독립미술가협회의 전시회에 출품했다.
이 협회는 진보적이고 개방적인 태도를 표방했다.
기존 미술전에서는 입선과 낙선을 가리는 심사가 당연시됐던 데 반해,
여기서는 심사 없이 누구나 작품을 출품하고 전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뒤샹은 그들의 개방성을 시험해보고자 했다.
걸작과 졸작을 나누는 잣대를 없애고 나면
그다음에는 무엇이 미술이고 미술이 아닌지,
즉 아름다운 미술과 평범한 사물 사이를 가르는
더 근본적인 가치 판단의 근거가 남기 때문이다.
하지만 협회는 '샘'을 전시해주지 않았다. 미술가가 직접 만든 작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뒤샹은 미술이란 더 이상 작가가 손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응수했다.
그 이후에도 '샘'은 한 번도 미술관에서 전시된 적이 없지만, 20세기 초 아방가르드의 상징이자 기성품의 미술,
'레디메이드'의 시작으로 현대미술사의 전설이 되었다.
최근 한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뒤샹의 '샘'을 '쌤'으로 발음하는 걸 들었다.
언젠가 TV에서도 'Sam'이라는 자막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었다.
다시 한 번, 뒤샹의 작품은 '쌤(Sam)'이 아니라, '샘(Fountain, 泉=湶)'이다.
어쨌든 물이 흘러나오는 물건이니 딱 적당한 제목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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