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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읽는 한시] 한 해를 보내며

바람아님 2014. 12. 29. 10:05
(출처-조선일보 2014.12.29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가슴으로 읽는 한시] 한 해를 보내며/송준영


한 해를 보내며


골짜기로 가는 긴 뱀처럼
서둘러 해가 넘어가는 때라
눈앞으로 지나는 세월을 보며
오랫동안 상념에 젖어 있다.

나이 든 얼굴은 움츠러들어
귀밑머리엔 서리가 내려앉고
추위는 기세등등하여
나뭇가지엔 눈이 얹혀 있다.

글 읽는 사람이니
스스로 힘써야 할 뿐
청산 밖 세상사야
내가 뭘 알겠는가?

아름다운 약속을 남겨
술동이를 가득 채워놓고서
꽃을 피우는 첫 번째 바람이 불
그날을 기다리노라.


次古韻


赴壑脩鱗日不遲(부학수린일부지)

年光閱眼久尋思(연광열안구심사)




衰容縮瑟霜添鬢(쇠용축슬상첨빈)

寒意憑凌雪在枝(한의빙릉설재지)




黃卷中人須自勉(황권중인수자면)

靑山外事也何知(청산외사야하지)




十分盞酒留佳約(십분잔주유가약)

會待花風第一吹(회대화풍제일취)




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 선생이 한 해가 저물어가는 세밑에 썼다. 
세밑에는 잊고 지냈던 세월의 흐름이 의식 속에 들어오고, 내 나이와 건강과 해놓은 일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즐거운 기억에 젖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대개는 주름살 깊어진 얼굴처럼 우울함을 자아낸다. 
남이나 세상에 관심을 돌릴 여유가 없이 나 자신에게 집중할 때다. 
성호 같은 철인(哲人)도 청산 밖 세상사는 모르겠다고 했다. 
꽃피는 봄에나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갈 여유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