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주용중 칼럼] 누가 '北核 무감각증'을 부추겼나

바람아님 2015. 1. 14. 10:49

(출처-조선일보 2015.01.14 주용중 정치부장)

北은 사실상 核 국가… 핵무기 늘리며 위협하는데 우리 사회는 먼 산 바라보듯
노무현 정부 인사들이 퍼뜨린 '북핵은 협상용' 궤변 벗어나 KAMD와 킬체인부터 다져야

주용중 정치부장지금 우리 안보에 구멍이 뻥 뚫렸다. 그런데도 둔감하다. 
구멍 뚫린 것도 문제지만 둔감한 게 더 문제다. 
최근 미국의 핵과학자인 헤커 박사는 북한이 핵무기를 1년 전보다 2개 늘어난 12개 갖고 있다고 
추정했다. 6개는 플루토늄, 6개는 우라늄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북한은 우라늄 매장량이 비공식 세계 1위다. 
우라늄 농축 기술이 발전하면 핵무기가 20, 50, 100개로 쑥쑥 늘어날 수 있다. 
며칠 전 발간된 2014년 국방백서엔 '북한의 핵무기 소형화 능력이 상당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는
정부의 판단이 처음으로 담겼다. 북의 스커드·노동 등 탄도미사일 1000여 기는 이 순간에도 남측을 
겨누고 있다. 
국방백서는 북이 사실상 핵 국가이고 머지않아 북 미사일에 핵탄두가 달릴 수 있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다.

북한의 핵 위협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지난주말에도 "체제 대결이 우리 민족에게 가져다줄 것은 핵전쟁의 재난밖에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정부 당국자나 국민이 그러려니 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거슬러 올라가 보자.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북한이 '핵은 외부 위협에 대한 자위용 억제 수단'이라고 한 것은 일리가 있다"고 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2005년 "북한의 메시지는 핵을 포기하고 양도할 용의가 있으니 삶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라고 했다.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직후엔 한명숙 총리가 "북한의 재래식 무기는 우리를 겨냥하고 있지만 
핵무기는 우리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 북이 핵실험을 통해 국제 협상력을 높이려는 것"이라고 했다. 
이들이 지금 상황에서도 과연 똑같은 얘기를 되풀이할 것인지 묻고 싶다. 
이들은 본의든 아니든 국민을 속였고 그 결과 우리 사회의 '북핵 무감각증(無感覺症)'은 중증(重症)이 됐다.

안보를 논할 때는 상대의 의지와 능력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의지는 알기 어렵고 변한다. 
아무 근거 없이 상대방의 선의(善意)를 기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반면 북의 핵 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마땅히 대비했어야 하는데 우리는 지난 20여년간 먼 산 바라보듯 해왔다.

핵을 억제할 수 있는 수단은 크게 세 가지다. 
핵전력, 미사일을 쏘기 전 탐지해 타격하는 킬 체인(Kill Chain), 발사된 미사일을 요격하는 KAMD(한국형 미사일 방어) 등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국제 정치적으로 핵을 독자 개발하기 곤란한 처지다. 
그렇다면 나머지 방안을 강구해야 하는데 둘 다 걸음마 수준이다. 
킬 체인을 국방부는 2023년까지 완성한다는 계획이지만 북한이 이동식 발사대를 늘리고 
미사일 액체연료를 개량해 발사 준비 시간을 크게 단축하는 상황에선 실효성을 거두기가 쉽지 않다.

마지막 방어 수단인 KAMD는 완전 초보 단계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노무현 정부 때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씨는 작년 5월 KAMD에 대해 
"우리가 우리 돈 들여가면서 (미국의) 대중(對中) 포위망에 들어간 것"이라고 했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작년 12월 "미국 입장에서는 북핵 문제를 이대로 놔두고 한국에 MD를 팔아먹는 것이 더 이익일 수 있다.
이는 중국 견제용으로도 쓰일 수 있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는 중국을 자극한다는 논리로 KAMD의 핵심인 패트리엇 PAC-3(저고도 요격 미사일) 도입을 극구 꺼렸고, 
이들은 지금도 같은 주장을 퍼뜨리고 있다. 
그런데 패트리엇 PAC-3든 고(高)고도 미사일인 사드(THAAD)든 모두 미사일을 잡는 데만 쓰이는 방어용이다. 
공격용 무기도 아닌데 중국을 핑계로 내세워 스스로 족쇄를 자청한 것이다. 
담을 높게 쌓는 것을 공격용이라고 오도(誤導)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패트리엇 PAC-3는 내년에나 투입될 예정이다.

어떤 사람은 북핵 위협에 대해 미국의 핵우산, 확장 억제 정책에 기대면 되지 않느냐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경우 미·북 관계의 변화에 따라 우리는 언제든 북의 핵 인질이 될 수 있다. 
더구나 북이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을 발전시킬 경우 미국마저 속수무책이 된다. 
천안함이 당하고 연평도가 당해도 우리가 꼼짝 못 한 데는 북핵이 두려운 측면이 없지 않았다고 
정부 관계자가 털어놓은 적이 있다.

북핵 해결책은 미·중·러와 함께 찾아야겠지만 우리도 최소한의 억제 수단을 갖춰야 한다. 
북 수뇌부가 핵을 사용할 경우 곧바로 제거당할 수 있다는 인식도 심어줘야 한다. 
북이 핵의 전략적 이익이 크지 않다고 판단해야 협상장에도 나올 수 있다. 
핵 안보에 관한 한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라 북한 편이라는 사실이 억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