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1.10 한삼희 논설위원)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오는 15일 열리는데 월성원전 1호기의 계속 운전안(案)이 상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위원회는 안이 상정되면 '10년 연장 운영'인지 '폐로(廢爐) 처분'인지 결정하게 된다.
월성 1호기는 2012년 11월 '30년 운영 허가 기간'이 만료됐다.
한국수력원자력은 2009년 12월 월성 1호기를 2022년까지 10년 더 연장해 가동하겠다고 정부에
신청했고 안전위원회가 이를 심사해왔다.
작년 10월 월성원전을 방문한 적이 있지만, 솔직히 비(非)전문가로선 설명을 들어도 판단에 한계가 있다. 다만 월성 1호기는 주요 부품을 대부분 바꿔 끼워 사실상 새 설비나 다름없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핵심 설비인 압력관은 3000억원을 들여 교체했다고 한다. 세계 가동 원전 435기 가운데 30년
또는 40년의 운영 허가 기간을 넘겨 계속 운전 중이거나 계속 운전 승인을 받은 것이 150기나 된다는
설명도 들었다.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면 기존 원전의 운영 허가 기간을 연장해 더 가동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아무래도 떨떠름하다.
월성 1호기의 계속 운전 신청·심사 과정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수원은 계속 운전 신청서를 내기도 전인 2009년 4월부터 월성 1호기에 대해 대규모 설비 교체 작업에 들어갔다.
2011년 7월까지 2년여 진행된 이 작업에 7000억원이 들었다.
계속 운전 심사는 해당 원전을 10년 더 가동해도 안전성·경제성 측면에서 별문제 없겠느냐를 판단하는 과정이다.
심사에서 연장 가동이 결정되면 그때부터 10년 추가 가동에 필요한 설비 교체·보강을 하는 게 일의 순서다. 미국·캐나다 같은
원전 선진국은 그렇게 한다. 만일 7000억원이라는 돈을 들여 설비를 새것으로 바꿔놨는데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계속 운전
신청을 퇴짜 놔버리면 새 설비를 다시 뜯어버려야 한다. 한수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거의 재앙적(災殃的) 상황이 된다.
한수원은 지금 '7000억원이나 들였는데 문 닫게 만들 거냐' 하고 배짱을 퉁기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식이면 계속 운전이 타당한지를 따지는 경제성(經濟性) 평가도 왜곡된다.
설비 교체에 투입된 7000억원은 경제학 용어로 '매몰 비용(sunk cost)'에 해당한다.
7000억원을 아직 넣지 않은 상태에선 '7000억원이 추가로 들어가야 되는데 10년 연장 가동할 필요가 있겠느냐'를 검토하게
된다. 반면 7000억원을 이미 써버린 상태에선 그 7000억원이 '앞으로 추가로 들어갈 돈'은 아니기 때문에 비용(cost)으로
잡히지 않는다. 당연히 계속 운전을 하자는 쪽 의견이 유리해진다.
국내 원전 가운데 10기가 2023년부터 2029년 사이 운영 허가 기간이 만료된다.
이때 집중적으로 원전 연장 가동을 둘러싼 갈등이 벌어질 것이다.
계속 운전 심사를 먼저 마쳐놓고, 승인이 난 경우에 한해 설비 보강 투자를 하도록 절차를 정비해야 한다.
한수원이 수천억원을 자기들 마음대로 써놓고서 그 돈을 인질(人質) 삼아 원자력안전위원회와 국민에게 '해줄 거냐 말 거냐'
하고 협박하듯 들이대는 행태를 내버려둬선 안 된다.
그건 안전위원회의 계속 운전 심사를 요식(要式) 절차로 전락시켜 버리는 것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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