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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읽는 한시] 낙지론 뒤에 쓴다

바람아님 2015. 2. 16. 09:37

(출처-조선일보 2015.02.16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가슴으로 읽는 한시] 낙지론 뒤에 쓴다

 /송준영

지론 뒤에 쓴다


가난한 선비가 살림살이는 옹색할망정
조물주에 다 맡기고 살아가는 것이 기쁘다.
숲과 꽃을 힘들여서 재배할 일도 없고
못을 파고 폭포 만드는 공사는 벌리지도 않는다.
물고기랑 새랑 제풀에 와서 벗이 돼주고
시내와 산은 집을 에워싸고 창문을 보호한다.
그 속의 참 즐거움은 천 권의 책에 있나니
손길 가는 대로 뽑아 보면 온갖 잡념 사라진다.

題樂志論後


貧士生涯本隘窮(빈사생애본애궁)
卜居惟喜任天工(복거유희임천공)
林花不費栽培力(임화불비재배력)
潭瀑元無築鑿功(담폭원무축착공)
魚鳥自來爲伴侶(어조자래위반려)
溪山環擁護窓櫳(계산환옹호창롱)
箇中眞樂書千卷(개중진락서천권)
隨手抽看萬慮空(수수추간만려공)
순암(順庵) 안정복(安鼎福·1712~1791)이 전원에서 사는 멋을 노래했다. 자유롭게 사는 행복을 노래한 중장통(仲長統)의 '낙지론'이란 글 뒤에 
써서 자신의 삶도 그보다 못하지 않다는 행복감을 표현했다. 
시골에 사는 옹색한 인생이라고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조물주가 하는 대로 내버려둬도 다 괜찮다. 
가만있어도 숲과 꽃, 못과 폭포가 눈을 즐겁게 하고, 
르지 않아도 새와 물고기가 찾아오고 산과 물이 집을 꾸며준다. 
그렇게 사는 것만도 충분한데 마음 가는 대로 책을 꺼내 읽는 여유로움까지 누린다. 세상에서 누리는 청복(淸福)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