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청와대의 벼랑끝 협상

바람아님 2019. 11. 18. 08:45


디지털타임스 2019.11.17. 18:56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D-5. 오는 23일 0시로 예정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의 종료를 앞두고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을 비롯한 미국 군 수뇌부들이 대거 한국을 방문, 문 대통령과 정책결정권자들을 만났다. 문재인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카드는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지난 8월 일본의 수출규제로 촉발된 한일 무역 갈등에 관심을 갖지 않던 미국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일본을 압박하지 않고 오히려 한국정부를 몰아세우고 있다. 일본과의 무역 분쟁과 지역 안보문제를 분리하라는 주문이다. 우리 정부만 압박하는 미국이 야속하기만 하다.


하지만 미국을 탓하기에 앞서, 문재인 정부의 정책판단이 과연 옳았는지를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지소미아 종료가 최선의 결정이었는가 하는 문제다. 정부는 일본이 안보상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출규제를 했기 때문에 일본과 군사정보를 더 이상 공유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혀왔다. 지소미아 종료선언으로 얄미운 일본을 한 대 때렸다고 쾌재를 불렀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본은 수출제한조치를 철회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대신 미국이 서운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지소미아 종료 카드를 접는 것은 국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되었다. 차라리 지소미아 종료 가능성을 언급만 하고, 결정을 유예했더라면 우리 정부로서는 운신의 폭이 더 넓었을 것이다.


지소미아가 갖고 있는 한·미·일 안보동맹의 상징성을 문재인 정부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은 동쪽으로 대서양, 서쪽으로 태평양과 접해 있다. 미국은 1775년 해군을 창설한 이래 첫 100년은 대서양으로, 이후 100년은 태평양으로 군사력을 확대해왔다. 1898년 하와이를 미 영토로 편입시키고, 필리핀을 지배하면서부터 미국은 태평양지역에 매우 많은 공을 들여왔다. 21세기 들어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세우고 인도양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여기에는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중국의 팽창정책, 일대일로(一帶一路)를 견제하려는 생각이 담겨있다. 하지만 지리적 거리 등으로 인해서 미국 단독으로는 인도양 지역을 감당할 수 없다. 결국, 주변 해양국가인 일본과 인도, 호주 등을 핵심우군으로 삼고 한국과 싱가포르, 대만 등의 협력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우방간 정보공유는 필수적이다. 그렇기에 지소미아는 단지 한·일간의 군사정보 공유시스템이 아니라 미국 우방간의 정보 네트워크인 셈이다.


물론 지소미아가 종료된 뒤에 다시 협정을 맺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국이라는 복병이 자리 잡고 있다. 사드 배치 당시에 경험했듯이 무역제한을 무기로 중국이 방해한다면 우리 정부는 매우 힘겨워할 것이다. 지난해 중국 수출 비중은 26.8%(홍콩 포함 34.4%)로 갈수록 대중국 수출의존도는 커지고 있다. 여기에다 균형외교를 강조하며 친중노선을 거드는 세력까지 가미한다면, 파기된 지소미아는 복구가 불가능해진다.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한국은 미국보다 중국에 더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지소미아 종료를 계기로 한국이 중국 쪽으로 옮겨 가는 것 아니냐는 미국의 우려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는 한·일 무역갈등을 푸는 고리로 지소미아를 이용했지만 지난 3개월간 외교적인 노력은 그리 많지 않았다. "(미국에) 도와달라 요청하는 순간 '글로벌 호구'가 된다"는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차장의 말처럼 미국을 통한 해결방식을 적극 도모하지 않았다. 더구나 미국 상원과 하원을 통해 우리 정부의 입장을 강력히 설명해야 할 주미대사는 이 시기 교체기의 혼란을 겪었다.


흔히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협상 스타일을 럭비공이라고 부른다. 강한 어조로 압박의 끈을 조였다가 풀어주고 합의에 도달하면 내용을 뒤집는 극단적 협상 스타일이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초지일관형이다. 원칙을 정하면 손해를 보더라도 변경하지 않는다. 그런 문재인 대통령이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로 지소미아 협상을 하고 있다. 일본과 미국 모두 문 대통령의 메시지를 충분히 알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한국과 일본, 미국 모두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벼랑 끝에서도 사고의 유연함을 가져야 한다. 한 가지 입장만 고수한다면 자칫 많은 것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의 플랜B에는 한미동맹에 균열이 절대 생겨서는 안된다는 원칙이 담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