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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도의 무비 識道樂] [148] Eat this

바람아님 2019. 11. 30. 12:54

(조선일보 2019.11.30 이미도 외화 번역가)


'지옥에서 나와 빛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어렵다(Long is the way and hard, that out of hell leads up to light).'

악과 선을 은유하는 지옥과 빛을 대비해 인간의 타락과 메시아의 구원을 다룬 존 밀턴 책 '실낙원(Paradise Lost)'의

명구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Snowpiercer·사진)'도 이 화두를 던지는 공상과학 지옥도(地獄圖)입니다.


영화 '설국열차'


무대는 기온 상승을 막겠다고 인간이 뿌린 화학 가스 때문에 제2 빙하기에 갇힌 미래의 지구.

극소수 생존자만이 365일 잠시도 멈추지 않고 질주하는 열차에서 살아갑니다.

열차는 꼬리 칸과 앞쪽 칸으로 탑승자 신분을 가르는데요, 하층민용 꼬리 칸 탑승자는 전체의 99%입니다.

바퀴벌레로 만든 식량을 제공받기 전까지 그들의 먹이는 인육.

하루는 주인공 커티스와 그의 무리가 한 아이를 에워쌉니다.

그때 성자(聖子) 형상의 노인이 나서더니 커티스 칼로 자기 팔을 잘라 주며 말합니다. "이걸 먹어라(Eat this)."

'손을 살리려면 때로는 손가락을 잘라야 한다(Sometimes you have to cut off your finger to save your hand).'

이 은유엔 '선(善)이나 대의(大義)를 지키려면 때로는 희생이 따른다'는 함의가 있습니다.

꼬리 칸 지도자 커티스는 자기 목숨을 바칠 각오로 17년간 벼른 혁명을 일으킵니다.

때마침 그는 빙설이 녹고 있다는 걸 알아챕니다. 표적은 열차용 특수 엔진을 만든 윌퍼드.

그에게 엔진은 기관차의 심장인 동시에 절대 권력의 도구입니다.

독재자인 그는 꼬리 칸 노동력을 착취해 앞쪽 칸 상류층이 특권을 누리게 합니다.


혁명 목표는 엔진을 멈추는 것. '지옥 칸'을 해방하기 위한 커티스의 여정은 멀고 험난합니다.

윌퍼드 부하들은 반란자들을 잔혹하게 응징합니다.

보안 설계자 남궁민수의 도움을 받아 모든 칸을 뚫고 진격해 엔진실에 진입한 커티스는 경악합니다.

비좁은 엔진실에서 어린아이들이 엔진 부품 용도로 착취당하는 걸 본 겁니다.

이제 그는 열차를 세우기 전 아이들 목숨부터 구해야 합니다.

커티스가 톱니바퀴 틈에 집어넣습니다. 자신의 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