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문유석(43) 광주지법 부장판사

바람아님 2014. 7. 4. 09:50

(출처-조선일보 2012.6.1. 조의준 기자)

[판사가 판사를 말하다… 문유석 초임 부장판사, 게시판에 올린 일기 연일 화제]
재판정에도 유재석이 필요해 - 재판장 혼자 열변 토하고 배석은 고개만 끄덕거린다?
적극적으로 듣고 진행하는 토크쇼 MC 같은 판사 돼야
소설 '레미제라블'처럼… - 22년 복역 후 또 지갑 훔쳐 "한번도 용서받은 적 없다"
피고인의 가슴 찌른 한마디… 형벌이 뭐고 용서가 뭔지…
야근 말고 세상과 소통하자 - 10년간 TV도 안보고 재판기록 읽으면 大家 된다?
신문·인터넷 두루두루 보며 국민들과 눈높이 맞춰야


	[오늘의 세상] "3명이 뒷짐 진 채 삼각편대 모양… 앗, 재판부 갈매기들이 지나간다"


광주지법 문유석(43·사진) 부장판사는 요즘 판사 사회의 '스타작가'다. 

그가 4월 초부터 법원 게시판에 연재 중인 '초임 부장판사의 일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재판하면서 느낀 소회, 판사 사회의 일상 등을 위트와 성찰을 담아 풀어내고 있다. 

지금까지 7건인 그의 글을 매번 수백 명의 판사가 읽고 있다. 

1997년 판사가 된 그는 지난 3월 부장판사가 됐다. 글을 요약해 싣는다.

<게시자 주석 : 현재는 인천지법 부장판사>


◇판사도 대화의 기술 필요(4월5일)

법원 식당에서 재판부가 식사할 때 재미있는 점을 발견합니다.

부장님(재판장) 혼자 열변을 토하고 배석은 고개만 끄덕거리는 모습, 부장님이 초스피드로 식사를 마치고 수저를 탁 내려놓음과 동시에 벌떡 일어나면 식사를 못 끝낸 배석들도 허겁지겁 따라 일어나는 모습, 그중 가장 공포스러운 것은 3인(재판장과 배석 2명)이 '묵언 수행' 중인 고승(高僧)들처럼 말 한마디 없이 시선을 아래로 한 채 규칙적으로 수저만 음식에서 입으로 왔다갔다하는 모습입니다.

떠오르는 기억이 있는데, 예전에 엄하기로 소문난 법원장님이 매주 한 번 판사들 티타임을 하자고 하시더군요. 소파에 정자세로 죽 둘러앉자 (법원장님은) "하고 싶은 얘기 해보세요" 하곤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 계시는 겁니다. 서로 눈치만 보며 두 손은 무릎에, 시선은 탁자 위에 고정하고는…침묵이 길어지는데 법원장실 괘종시계 초침 소리는 어찌나 크게 들리던지

(아직도 그 초침 소리가 환청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해답을 TV 예능프로에서 찾습니다. 시청자를 붙잡으려는 치열한 전쟁터에서 롱런하는 유재석이 잘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듣기'입니다. 이건 판사에게도 요구되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법정, 소통하는 재판이 되려면 재판장은 '토크쇼 MC형'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단 한 번도 용서받아 본 적이 없다"던 피고인(4월17일)

국민참여재판이 있었습니다. 40대 중반 피고인은 중2 때 절도로 소년원에 간 뒤 22년을 징역 및 보호감호를 받은 사람입니다. 출소한 날 또 남의 지갑을 훔쳤습니다. '나 징역 살려봤자 또 훔칠 거다. 판사·검사 지갑부터'라며 법정 난동도 부렸습니다.

개전의 정이 없구나! 많은 생각이 교차하더군요. 그런데 그 순간 그의 한마디가 제 가슴을 찌르더이다. "나는 단 한 번도 용서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소싯적에 읽었던 소설 레미제라블이 생각나더군요. 고민 끝에 정신과 의사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의사는 "이런 이에게 필요한 것은 의사가 아니라 엄마"라고 하더군요.



	[오늘의 세상] "3명이 뒷짐 진 채 삼각편대 모양… 앗, 재판부 갈매기들이 지나간다"

배심원들과 재판부는 토론을 거쳐 법정형 하한보다는 높지만 다소 가벼운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하기로 했습니다. 

그에게 말했습니다. "일생 단 한 번도 용서받지 못했다고 했는데, 이제 처음이자 마지막 용서를 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는 '정말로 새사람이 되겠다' 외치더군요. 진정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최소한 그 순간은 가식으로 보이진 않더이다.

◇판사 사회의 '불편한 진실' (4월25일)

서초동(법조타운)에서 점심시간에 식사하고 들어올 때 보면 누가 판사인지 구별할 수 있었습니다. 

연장자가 가운데, 젊은 두 분이 좌우에서 '삼각편대' 비행을 하고, 셋 다 뒷짐을 지고 있다면 재판부가 틀림없더군요. 

언젠가 바닷가로 수련회를 갔는데 갈매기가 삼각편대로 날아가자 어느 판사가 "아, 재판부 갈매기다!"라고 했을 정도로.

초임 판사 시절 맹랑했던 저는 어느 날 일부러 걸어가면서 부장님 왼쪽이 아닌 우배석 판사님 옆으로 '공간 침투'를 해봤습니다.

그 순간 공간의 일그러짐이랄까, 설명할 수 없는 에너지의 파장이 강력히 느껴지더니 가운데 선 우배석이 부장님 왼편으로 

스르륵 순간 이동하더군요. 왜 이러는 걸까요?

불편한 진실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법원의 만원(滿員)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 안쪽에 탄 상서열자들 앞쪽의 하서열자는

'모세의 기적'처럼 길을 내고, 한 명만 누르면 족한데도 좌우에서 모두 열심히 '열림 버튼'을 누르고 있는데, 본의 아니게 열릴 

때 밀려 내린 이까지 밖에서 중복해서 열림 버튼을 누르거나 처연하게 엘리베이터 문을 손으로 붙잡고 있기까지….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요즘 같은 변화의 시기에 훌륭한 인재가 판사직을 지망하려면 직장의 매력도 중요합니다. 

젊어도 위축되지 않고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조직이 아니라면 젊은 재능이 찾아들지 않을 것입니다.

◇판사들이여, 야근하지 마라(5월11일)

언제부턴가 우리 스스로의 자화상은 매일 밤늦게까지 기록을 넘기고 판례를 검토하는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습니다. 어떤 모임의 뒤풀이 자리에서 이런 얘기가 나왔습니다. 

'어떤 판사는 10년간 TV를 보지 않았다고 하더라. 하루도 빠짐없이 재판 기록을 읽고…그래서 대가가 되셨다.'

그런데 반응이 영 의외더군요. 한 명이 얘기하기를 "솔직히 그런 판사에게 재판받고 싶지 않다." 

모임 참석자들은 '모두가 공분하는 성폭력이나 화이트칼라 범죄에 납득하기 어려운 형이 선고될 때 판사들은 다른 별에 살고 

계신가 생각될 때가 많다'고들 했습니다.

공감이 또다시 화두인 듯합니다. 사람들은 공감할 수 있는 재판을 바라고, 공감하려면 소통해야 합니다. 

국민들의 눈높이가 높아졌고, 어찌 보면 참 판사 하기 힘든 세상입니다. 야근할 시간이 없습니다. TV를 10년간 안보기는커녕 

가능하면 서로 다른 입장의 신문까지 같이 보고, 인터넷 여론도 살펴야 겨우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회인이 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런데, 이 글도 야근하면서 쓰고 있습니다.



◆ 문유석 초임 부장판사가 법원 게시판에 올린 일기들
[게시글 원문①] 적극적으로 듣기
[게시글 원문②] 첫 국민참여재판을 마치고  
[게시글 원문③] 불편한 진실 
[게시글 원문④] 판사에게 야근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