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詩와 文學

[일사일언] '노들강변'에 흐르는 恨

바람아님 2014. 8. 15. 12:16

(출처-조선일보 2014.08.15 하응백 문학평론가·휴먼 앤 북스 대표)


하응백 문학평론가·휴먼 앤 북스 대표 사진민요는 통상적으로 작사·작곡자가 알려져 있지 않다. 
개화기 이후 새롭게 만들어진 노래를 신민요라고 하는데, 
이 신민요도 대부분 작사·작곡자가 알려져 있지 않다.

신민요 중의 하나인 '신고산(新高山)타령'을 보면 
"신고산이 우르르 함흥차 가는 소리에/ 구고산 큰 애기 반봇짐만 싸누나"라는 가사가 나온다. 
경원선(京元線)이 1914년 개통되자, 기존 마을은 구(舊)고산이 되고 역 부근은 신(新)고산이 되었다. 
이 가사는 경원선과 함경선이 개통되면서 기차라는 신문물이 촉발시킨 전통사회의 동요(動搖)를 
반영하고 있는 내용이다.

아주 드물게도 작사·작곡자가 확실히 밝혀져 있는 신민요 중에 '노들강변'이라는 것이 있다. 
이 노래는 1930년 신불출이 작사하고 문호월이 작곡했다. 
당시 가수 박부용의 노래로 서민들의 사랑을 받아 신민요로 정착했다.
본명이 신영일로 알려진 신불출(申不出· 1905~?)은 일제강점기 최고의 만담가였다고 한다. 
그는 개성 출신으로 송도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한 이후 1925년 연극계에 등장한 이래 1930년대에 활발한 활동을 했다. 
연극 도중에 대본에 없는 민족주의적 발언을 하여 경찰서에 연행되기도 했다.

일제 탄압에도 만담가답게 해학적으로 대처했다. 
일제 말기에 창씨개명을 강요받자, 강원야원(江原野原)이라 개명했다. 
일본어 발음은 '에하라 노하라'. 
이 이름은 "될 대로 되어라"는 의미의 추임새로 해석될 수 있어 당시 장안에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그의 예명인 '불출(不出)'도 "이렇게 일본 세상인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세상에 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뜻에서 지었다고 한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노들강변' 가사도 보기에 따라 심상치 않다. 
3절은 "노들강변 푸른 물 네가 무삼 망령으로/ 재자가인(才子佳人) 아까운 몸 몇몇이나 데려갔나"이다. 
일제 탄압으로 죽어간 독립투사에 대한 안타까움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노들강변'의 전체를 흐르는 정조는 바로 일제 탄압에 대한 민족적 저항과 한(恨)이었던 것이다.



<각주 - "신고산">

"신고산"은 함경남도 안변군에 있는, 경원선(京元線)의 한 역(驛)으로 역이 생김에 따라 

기존의 고산 마을은 구(舊)고산이 되고 역 부근은 신고산이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고산타령 [新高山打令]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