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詩와 文學

[가슴으로 읽는 동시] 저 많이 컸죠

바람아님 2014. 8. 29. 10:52

(출처-조선일보 2014.08.29 이준관 아동문학가)


[가슴으로 읽는 동시] 저 많이 컸죠


저 많이 컸죠


할머니는
싱크대가 자꾸 자라는 것 같다고 합니다.
장롱도 키가 크는 것 같다고 허리 두드립니다.

할머니 키가 작아져서 그래…
말하려다가 이불을 펴 드렸습니다.
허리가 꼬부라져서 그런 거야…
입술 삐죽이다가, 싱크대 찬장
높은 칸에 놓인 그릇을
아래 칸에 내려놓았습니다.

우리 손자 많이 컸다고
이제 아비만큼 자랐다고 웃습니다.
쓰다듬기 좋게 얼른 머리를 숙입니다.

―이정록(1964~ )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키가 큰다. 

소나기 그친 후 옥수숫대처럼 쑥쑥 키가 큰다. 

웃고 떠들면서 크고, 장난하면서 크고, 노래하면서 큰다. 

키만 크는 게 아니다. 

그리운 눈빛으로 먼 하늘을 바라보며 꿈이 크고, 

깊은 밤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생각이 큰다.

손자 아이는 날마다 크지만 할머니는 허리가 굽어 키가 작아진다. 

장롱 이불도 마음대로 내릴 수 없게, 싱크대 찬장 높은 칸에 놓인 

그릇도 내릴 수 없게, 키가 자꾸만 작아진다. 

할머니는 키가 작아지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 싱크대와 장롱이 

자란다고 말하지만 아이는 안다. 

할머니 허리가 굽어 키가 작아져서 그렇다는 것을. 이불을 펴드리고

그릇을 아래 칸에 놓아주는 마음도 예쁘지만, 

할머니가 머리 쓰다듬기 좋게 얼른 머리를 숙여주는 

아이의 마음은 더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