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詩와 文學

[가슴으로 읽는 시조] 태화강 하구에서

바람아님 2014. 10. 12. 18:50

(출처-조선일보 2014.10.11 정수자 시조시인)



[가슴으로 읽는 시조] 태화강 하구에서

/이철원

태화강 하구에서

썰물 진 해질 녘, 노을빛 속에서
펼쳤다 지워지는 아우라를 보았다
살면서 그런 순간을
목도한 적 있었지

곡선의 갯벌을 따라 그림자와 걸을 때
갈밭 사이 황금비단, 눈부시되 쓸쓸하더라
이십대, 어느 한 시절
마음이 와서 울던 곳,

―신춘희(1953~ )


**.각주 : 아우라 (Aura) - 

예술 작품에서, 흉내 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 독일의 철학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예술 이론에서 나온 말이다.


가을 구름처럼 둥둥 바람 드는 마음을 도처에서 마주친다. 
'바람들은 어쩌자고 자꾸 와서 흔드나' 높푸른 바람이 예서제서 흔들리는 가슴을 싣고 
물들어가는 단풍 사이를 연일 지나간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들 하지만 이 가을날 흔들리는 게 남자뿐이랴. 
여자들도 날마다 새 바람을 넣는 햇살과 단풍 사이를 헤치고 다니느라 하늘을 자주 올려다본다. 
먼 데를 한참씩 바라보기도 한다.

가을이면 그렇게들 간절해지나 보다. 
놓치고 온 것만 아니라 바람을 따라나서면 무엇이든 만날 것만 같은 마음도 더해지나 보다. 

그런 날 '눈부시되 쓸쓸'한 어느 하구, '갈밭 사이 황금비단' 앞이면 더할 나위 없으리. 
그런 하구에서 그리는 '이십대, 어느 한 시절 / 마음이 와서 울던 곳'! 
그냥 또 가서 오래도록 서봐야 하리. 
옛 마음 다시 펴서 깊이 젖고 싶은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가을날!